세계경제는 여전히 안갯속에 있다.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미중 갈등 장기화, 지정학 리스크 상시화 등은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불확실성을 드리우고 있다. 그럼에도 국제통화기금(IMF)은 10월 보고서에서 중동 지역 경제를 ‘탁월한 회복탄력성(Remarkable Resilience)’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상호관세와 세계 무역 제한으로 인한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았고 이스라엘·이란을 둘러싼 지역 내 분쟁에 따른 영향은 제한적이고 단기적이었다는 진단이다.
중동 경제의 회복 흐름은 걸프협력회의(GCC)로 불리는 아랍 6개 산유국, 특히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고 있으며 내년에도 평균 성장률이 4.3%로 경기 모멘텀이 견조하게 유지될 것으로 예견된다. GCC가 추진하는 인공지능(AI)·에너지 전환 정책이 주변국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지역 전체의 성장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글로벌 AI 거버넌스 논의의 중심에 GCC 국가가 등장하면서 중동이 더 이상 ‘석유 경제’에 머물지 않고 AI 기반의 신산업 질서를 주도하는 신흥 주자로 부상 중이다. 10월 두바이에서 열린 ‘GITEX 글로벌 2025’는 이 같은 변화를 잘 보여줬다. 역대 최대 규모인 6800개 기업이 몰린 이번 행사는 ‘AI-에브리싱’이라는 주제 아래 AI 반도체, 로보틱스, 스마트시티 등 미래 산업을 총망라하며 중동이 더 이상 기술 수요 시장이 아닌 기술 실험의 전초기지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줬다.
주목해야 할 점은 중동의 변화가 ‘일시적 붐’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이라는 것이다. GCC 국가의 AI·재생에너지·인프라·관광 등 비석유 부문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70%를 넘어서는 추세다. 사우디 공공투자기금(PIF) 등 국부펀드는 스타트업 육성·연구개발(R&D) 공동 투자 확대에 나서 이른바 ‘AI 오일’로 불리는 데이터·지식산업의 가치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시키고 있다.
기회의 이면에는 주의해야 할 어려움도 있다. 국가별로 행정 절차와 인허가 체계가 상이하고 현지 파트너십 없이 독자 진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 공공 프로젝트 중심의 시장 특성상 의사 결정 속도가 느리고 현지 자본·인력 규제나 원산지 요건 등 비관세장벽이 강화되는 추세다. 기술력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려운 정책·문화·거버넌스 이해가 병행돼야 하는 시장인 셈이다.
한국 기업들은 AI 융합 산업에 전략적으로 진출할 필요가 있다. 단순 기자재 수출을 넘어 AI를 활용한 스마트 제조·공정 효율화 솔루션, 데이터센터 및 디지털 인프라 구축 사업 등이 유망하다. 아울러 국가별 협업 플랫폼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공공 프로젝트 주도형 산업구조에서는 단독 진출보다는 정부·공공기관과의 파트너십 또는 민관 합작 형태의 참여가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11월 한·UAE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전략적 AI 협력 프레임워크’에 대해 논의하고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 등 AI 부문에서 광범위한 협업을 약속했는데 향후 흐름이 기대된다. 중동은 경제의 회복탄력성에도 여전한 지정학 리스크와 함께 접근이 쉽지 않은 시장임이 분명하다. 다만 빠르게 성장하고 변화하는 중동의 AI 생태계는 함께 도약할 수 있는 좋은 파트너가 될 잠재력이 충분한 만큼 철저한 시장 분석을 기반으로 현지 신뢰와 협업 기반을 쌓는다면 새로운 기회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