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에 최철한은 ‘독사’니 ‘독수’니 하는 별명을 얻게 되는데 이 바둑에서 이미 그의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다. 가볍게 응수를 타진하려는 상대의 발목을 세차게 휘어잡아 유리한 전투로 이끄는 그의 독특한 수법이 빛을 발하고 있다.
최철한이 강인하게 버티자 펑첸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던 듯하다. 백44가 너무도 헤픈 착상이었다. 이 수로는 참고도의 백1에 뻗는 것이 최선이었다. 흑2가 불가피할 때 백3으로 끊고 5로 수습할 자리. 이것이라면 백도 큰 불만이 없는 그림이었다.
펑첸은 48로 모는 수에 매력을 느꼈던 것이겠지만 최철한은 여기서 다시 한번 무지막지한 해법을 들고나왔다. 흑49 이하 57의 우격다짐이 그것이었다. 펑첸이 기대했던 것은 흑49로 54의 자리에 미는 것. 그것이면 백은 군말없이 53의 자리에 받아준다. 그 교환은 자체로 백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흑이 59의 자리에 기어나오면 그때는 미련없이 가에 몰아버리고 나에 이을 예정이었던 것. 그런데 흑이 49, 51로 몰아붙이자 그의 달콤한 가상도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실전보 흑49 이하 58까지는 애초에 흑이 54의 자리에 그냥 민 것에 비해 흑이 훨씬 이득이라는 점이 관전 포인트. (47…45의 위)
/노승일ㆍ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