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17일 관훈토론회에서 밝힌 당 위기 수습책은 이회창 전 총재측과의 각 세우기를 통한 당내 장악력 강화에 목적이 있다. 최 대표가 대표직 사퇴 등 자신의 문제에 대해선 비켜간 탓에 이날 내놓은 수습책은 오히려 당 분란을 증폭시키는 새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최 대표는 이날 기조연설에서 “불법 대선자금의 중심에는 이 전 총재가 있다”며 “이 전 총재는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으며 감옥에 가더라도 본인이 가겠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이 말은 “이 전 총재가 감옥에 감으로써 당을 대선자금의 족쇄에서 해방시켜 줘야 한다”는 강력한 압박이다.
최 대표는 당초 이 대목을 “이 전 총재가 감옥에 가겠다고 했는데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한다”고 썼으나 이날 상임운영위의 연설문 독회에서 “너무 심하다”는 일부 의원의 지적이 있자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결단해야 한다”로 고쳤다가 결국 더 완곡한 표현으로 바꿨다.
최 대표의 본심은 분명 “이 전 총재를 밟고 넘어가겠다”는 데 있다. 그가 천명한 `개혁공천`도 서청원 전 대표를 포함, 이 전 총재와 가까웠던 인사들의 퇴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중론이다.
최 대표의 의도는 이 전 총재와의 차별화를 통해 자신의 개혁성을 부각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의 리더십에 회의적인 의원들에게 `최병렬이냐, 이회창이냐`의 선택을 강요함으로써 당을 확실히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17대 총선 공천권은 이를 위한 강력한 무기다.
그는 16일 의원총회에서 “공천 유력후보로 선정된 사람도 상대 당 후보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며 의원들에게 은근히 겁을 주기도 했다.
최 대표는 그러나 새로운 당 정체성 확립 실패, 지지부진한 개혁공천, 국회와 정국운영 혼선, 당 지지율 하락 등에 대한 자신의 책임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자신에 대한 부분은 “나의 거취를 공천심사위에 일임하겠다”는 게 전부다. 때문에 당내에는 “자신은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이 전 총재라는 과거에 책임을 덮어씌워 리더십 위기를 빠져 나오려 한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유성식 기자 ssyo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