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만 있으면 지갑 없이도 결제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신용카드·간편결제·계좌이체·QR결제·얼굴결제 등 다양한 방식이 등장하면서 소비자들은 점점 더 편리한 결제 환경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법과 제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어 새로운 지급결제 방식이 확산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 지급결제 시장은 오랫동안 신용카드 중심으로 운영돼왔다. 신용카드는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결제 수단이자 가맹점 결제 시스템의 기반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카드 또는 계좌에 미리 연결된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토스페이 같은 간편결제 서비스로 직접 결제하는 방식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기존 법체계가 신용카드 중심으로 짜여 있어 새로운 결제 방식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불합리한 구조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간편결제 서비스의 이중 수수료 문제다. 간편결제를 이용하면 소비자는 신용카드 없이 결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자지급결제대행(PG) 업체가 가맹점과 카드사 사이에서 돈을 정산하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현행 여신전문금융업법상 PG사가 신용카드 가맹점으로 등록돼 있어 신용카드 결제를 하지 않더라도 가맹점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소비자는 간편결제를 이용하는데 상점은 신용카드 결제를 한 것처럼 분류돼 불필요한 수수료를 한 번 더 내야 한다.
또 다른 문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결제에 대한 법적 구분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점이다. 현재 온라인 결제는 전자금융거래법이, 오프라인 결제는 여신전문금융업법이 각각 규율하고 있다. 그러나 QR결제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무는 결제 방식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이원화된 법체계가 현실과 맞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유럽연합(EU)은 지급결제서비스지침(PSD2·Payment Services Directive2)을 통해 핀테크 기업이 소비자의 동의를 받아 직접 은행 계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즉 카드사나 PG사를 거치지 않고도 결제가 가능해지면서 불필요한 수수료를 줄일 수 있게 됐다. 일본은 자금결제법 개정을 통해 지급결제 시장의 다양한 사업자들을 합리적으로 규율하고 있다. 특히 송금업을 소액·중규모·대규모로 구분해 핀테크 기업이 기존 은행과 경쟁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스테이블코인을 지급결제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자금결제법에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도 지급결제 시장의 현실을 반영해 법체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분리해 규제하는 방식을 벗어나 신용카드·계좌이체·간편결제·송금업 등 다양한 결제 방식을 하나의 법 아래에서 규율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QR결제·얼굴결제 등 새로운 기술이 법적 공백 없이 확산될 수 있도록 온라인과 오프라인 지급결제 규제를 통합할 필요가 있다. 또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소비자 보호와 결제 안정성을 감안한다면 지급결제법을 통해 이를 규율함이 바람직하다.
결제 방식이 다양해지는 만큼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도 유연하게 바뀌어야 한다. 해외처럼 지급결제 시장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법적 틀을 마련하고 신용카드 중심의 규제를 탈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내 지급결제 시장은 해외 선진국에 비해 경쟁력을 잃고 신기술 도입이 늦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이제 법이 그 변화를 따라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