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미 확정된 신규 원전 2기 건설을 다시 공론화하기로 하면서 정책 안정성을 해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9일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총괄위원회 첫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신규 원전을 국민 여론조사와 대국민 토론회를 거쳐 조기에 확정해 12차 전기본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나라의 핵심 에너지 정책을 전략적 검토와 과학적 검증이 아닌 여론조사 등을 통해 판단하겠다는 것은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이다. 더구나 올해 2월 확정된 11차 전기본에 반영된 신규 원전 2기 건설은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동의한 계획이다. 당초 한국수력원자력이 연내 원전 부지 공모에 나서기로 했는데 이제 와서 신규 원전 건설을 원점에서 다시 판단하겠다는 것은 정책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다. 그러니 공론화라는 명분으로 시간을 끌어 아예 백지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과 함께 사실상 ‘탈(脫)원전 시즌2’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이번 판단은 원전을 ‘기저 전원’으로 삼고 화력발전 및 재생에너지 등으로 전력 수급 변동을 보완했던 기존 국가 에너지 정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도대체 선진국 중 어떤 나라가 이미 확정된 계획을 여론조사로 손바닥 뒤집듯 바꾼다는 말인가. 게다가 원전에 반대하는 환경단체 인사가 전기본 총괄위에 다수 포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 에너지 정책이 과학이 아닌 이념에 휘둘릴 수 있다는 걱정이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 세계는 인공지능(AI) 전력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한 전력 인프라 전쟁이 한창이다. AI 데이터센터 가동에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지만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날씨 변화에 따른 간헐성 때문에 기저 전원인 원전을 대체할 수 없다.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도 아직은 요원하다. 미국·프랑스 등 선진국들이 앞다퉈 대형 원전 건설로 회귀하는 이유다. 에너지 백년대계를 여론몰이로 결정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공론화 계획을 당장 접고 원전을 중심에 둔 에너지믹스 전략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는 것이 옳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