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심장 아테네<br>억겁의 세월 품에 안은 서구문명의 보고<br>아크로폴리스엔 신화와 야만이 공존<br>철학·예술의 산실 디오니소스극장·아고라
 | | 아테네는 그리스의 수도인 동시에 그리스의 문화와 역사를 함축해놓은 '심장' 이다. 그리스 문명의 영광과 상처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파르테논 신전은 수호신을 모시는 성역이자 시민을 위한 요새로 쓰였고 오늘날에는 전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역사 유적 중 하나로 꼽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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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테네 시내 곳곳은 볼거리로 가득하다. 그리스에서도 상업도시로 이름을 떨쳤던 코린트의 도시 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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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기원전 6세기에 1만 5,000명의 관객을 수용했다는 디오니소스 극장 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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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기둥만 남은 아폴로 신전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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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테네 시내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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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코린트 운하 부근 노천카페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관광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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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악법도 법이다' 라는 명언을 남긴 소크라테스가 갇혔던 곳으로 전해지는 소크라테스 감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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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가 담고 있는 스토리와 상상력은 여행의 즐거움에 날개를 달아준다. 인류 문명의 뿌리인 그리스 신화가 잉태된 곳, 자유와 평화를 강조했던 올림픽 정신이 살아 숨쉬는 그리스라면 더더욱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오래된 돌덩이와 기둥에 지나지 않는 고대 유적지에서 다른 누군가는 사랑과 질투, 환희와 연민의 감정을 느끼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었던 신들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사도 바울과 요한의 발자취를 따라 매년 전세계의 수많은 기독교인이 성지순례를 떠나는 곳도 그리스이지만 또 누군가는 이집트ㆍ터키와 함께 '지중해 3국 패키지 여행'으로 묶어 지중해의 바람과 태양을 만끽하는 곳도 그리스이다.
그리스 여행의 목적은 제각기 다르더라도 한가지 공통점은 있다. 평생 꼭 한번은 인류 문명의 원류인 그리스를 여행해봐야겠다는 '호기심' 또는 '동경'을 품고 있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리스는 유럽의 남쪽 발칸반도에 위치한 반도 국가의 모습이지만 사실 그리스 국토의 25%는 에게해에 위치한 2,000여개의 섬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섬은 170여개뿐이지만 신화 속 인물들과 고대의 찬란한 역사는 억겁의 세월을 거슬러올라가 고대 그리스 시인인 호메로스가 '포도주 빛 바다'라고 극찬했던 에게해 곳곳에서 교감하며 오늘도 살아 숨쉬고 있다.
'신들의 왕'인 제우스의 고향 크레타섬을 비롯해 사도 요한이 신약 성경의 마지막장인 요한묵시록을 작성한 파트모스섬, 국내에서는 TV CF 배경무대로 유명한 산토리니섬 등에 이르기까지 수천년의 역사를 기록한 파피루스를 돌돌 풀어놓듯이 끊임없는 스토리로 전세계 여행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 바로 그리스이다.
그리스 여행의 첫 관문은 '지혜와 전쟁의 여신'의 도시 아테네이다. 아테네는 단순히 그리스의 수도라는 정치ㆍ경제ㆍ사회적인 함의를 떠나 그리스의 문화와 역사, 어제와 오늘을 함축해놓은 '그리스의 심장'이다.
◇신화와 야만이 공존하는 '아크로폴리스'='신들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는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의 전형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유적지 중 하나다. 지난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아크로폴리스는 수호신을 모시는 성역이지만 유사시에는 시민들을 위한 요새로, 평상시에는 정치 경제의 중심지이자 사교의 장이기도 했다.
아크로폴리스를 직역하면 '높은 도시'라는 뜻이지만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는 높이가 해발 156m에 불과해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에 가깝다. 아크로폴리스의 거대한 관문인 프로필라이아를 통과하면 전면에 파르테논 신전이 펼쳐진다. 높이 10m의 도리아식 기둥 46개로 이뤄진 파르테논 신전은 2,500년 전 고대 아테네의 영광을 그대로 간직한 듯 웅장한 모습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동시에 아크로폴리스는 야만의 역사이기도 하다. 1687년 그리스를 점령한 터키군은 아크로폴리스를 탄약창고로 사용했고 이에 맞서 싸우던 베네치아군의 폭격으로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아크로폴리스 유적 대부분이 파괴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때 떨어져나간 파르테논 조각상과 부조를 영국에서 가져가 대영박물관에 전시 중이니 '야만의 역사'는 현재까지 진행형인 셈이다.
어떤 상처와 영광을 간직했건 파르테논 신전은 전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역사 유적 중 하나인 것은 틀림없다. 아크로폴리스 유적의 바닥이 오랜 시간 수많은 관광 인파로 닳고 닳아 반들해진 것을 보면 그 인기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덕분에 아크로폴리스 곳곳에서는 '사진을 찍는 관광객' 다음으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 '추풍낙엽처럼 넘어지는 관광객'의 모습이다.
◇인류 지성과 예술의 산파=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남쪽을 내려다보면 두 개의 서로 다른 음악당과 극장이 보인다. 모든 객석에서 똑같은 크기로 음악을 감상하게 설계된 헤로드 아티코스 음악당이 그 중 하나다. 최근 6,000개 객석을 새로 만들어 매년 여름 '아테네 페스티벌'이 이곳에서 개최된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나 조수미씨 등 전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성악가들이 이곳 음악당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칠 정도로 과거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꿈의 무대다.
반면 디오니소스 극장은 과거의 영화와 함께 역사 속에 박제된 극장이다. 기원전 6세기에 1만5,000명까지 수용했다는 이 극장은 현재 유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술과 연극의 신이었던 디오니소스를 기리기 위해 매년 이 극장을 중심으로 '디오니소스 축제'가 열리곤 했다고 하니 삶과 예술을 조화시킬 줄 알았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멋과 풍류를 느낄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를 내려오는 길에는 건물 2층 높이의 바위 언덕인 아레이오스 파고스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전쟁의 신인 아레스가 자신을 딸을 겁탈한 악당을 살해한 후 이 곳에서 재판을 받았다고 해서 '인류 최초의 법정'이라 불린다. 이곳은 또한 서기 51년 사도 바울이 그리스 시민을 모아놓고 기독교를 전파해 기독교인들에게는 중요한 성지순례지이기도 하다.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 너머로는 고대에 광장 겸 시장 역할을 했던 아고라가 있다. 지금은 폐허로 남아 복원 공사가 한창이지만 고대에 아고라는 정치문제에 대해 논하거나 웅변가의 말에 귀 기울이는 곳이었다. 고대철학자이자 '대화법'의 창시자인 소크라테스와 인류가 '이데아의 세계'를 꿈꾸게 만들었던 플라톤 역시 이곳에서 연설했다.
◇'소크라테스 감옥'에는 소크라테스가 없다=아레이오스 파고스 왼쪽에 난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금세 '소크라테스 감옥'이라는 팻말을 발견할 수 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그의 격언은 역사의 격변기마다 인용되며 현재까지도 그 해석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만큼 소크라테스가 인류에게 끼친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이 때문에 그리스를 찾는 관광객들은 필수 코스처럼 소크라테스의 감옥을 찾는다고 한다. 마치 고려 말 충신 정몽주가 선죽교에 흘린 선혈 자국을 찾듯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독배를 마시고 스러져갔을 소크라테스의 최후 흔적을 필사적으로 더듬는다. 하지만 사실 소크라테스의 감옥은 아고라 인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될 뿐 현재 유적이 남아 있지는 않다고 한다. 소크라테스 감옥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다 보니 최근 그리스 정부가 아크로폴리스 인근에 위치한 감옥에 '소크라테스 감옥'이라는 팻말을 붙였다는 것이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듣는 이들의 맥이 풀리는 것도 당연지사. '환상을 깨는 것'도 여행의 일부라고 했던가. 하지만 어떤 환상을 품고 또 어떤 기대를 안고 가든 그 이상의 감동을 받고 돌아가는 곳이 그리스 아테네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