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월13일] <1293> 북치기 작전

1942년 1월13일 미국 플로리다 인근 해역. 군수물자를 싣고 항해하던 영국 상선이 독일 잠수함의 어뢰에 맞아 가라앉았다. 피해는 연일 이어졌다. 1월 말까지 25척(15만6,939톤)의 유조선과 상선이 침몰됐다. 독일이 미국 동부해안을 공포의 바다로 만든 애초의 이유는 생색용. 미국과 혈투를 벌이고 있는 동맹국 일본에 ‘성의를 보이고’ 미국을 적당히 위협하자는 의도였다. 때문인지 작전명도 ‘북치기 작전’으로 지었다. 북치기 작전에 투입된 잠수함은 달랑 5척. 기대 이상의 전과에도 단 한 척의 손실도 입지 않았다. 비결은 미국의 방심. 연안도시들의 휘황찬란한 조명은 야간항행 중인 상선의 실루엣을 잠망경에 고스란히 옮겨줬다. 독일 잠수함대는 연안 등화관제가 실시되고 호위함정이 따라붙은 6월 말까지 멕시코만과 파나마 일대까지 휘저었다. 북치기 작전은 1942년 7월 미국 동부의 전격적인 석유배급제 시행뿐 아니라 에너지 인프라 확충까지 앞당겼다. 유조선 피격의 원천봉쇄를 위해 미국은 원유생산지인 중서부에서 정제시설이 집중된 동부에 이르는 초대형 장거리 송유관 2개 노선을 깔았다. 1943년 완공된 송유관은 신속하고 안전하게 기름을 실어 날라 연합군의 연료통을 채웠다. 연안 대신 대서양 한복판에서의 통상파괴전을 택한 독일 잠수함대는 1943년 중반까지 맹공을 퍼부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호위선단이 강력해진데다 새로운 배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피해가 극심했던 1942년에도 독일 잠수함에 격침 당한 상선의 두 배 이상 되는 수송선을 새로 건조해냈다. 돈과 공업생산력의 힘이 승리를 이끈 셈이다. 투키디데스는 2,400여년 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이런 구절을 남겼다. ‘전쟁의 흐름을 결정하는 것은 약탈한 재산이 아니라 축적해놓은 자본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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