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1월29일] 유엔 '팔'분할 결의

1947년 11월29일, 국제연합이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결의한다. 팔 지역을 유태인 56%, 아랍인 43%로 나눠 유태ㆍ아랍 개별국가를 세운다는 내용. 유태인은 환호하고 아랍은 들끓었다. 유태인구 비중은 3분의1. 토지 점유비도 6%에 불과했던 상황. 불평등 결의안의 채택에는 나치의 대학살(홀로코스트)에 대한 동정이 한몫 했지만 이면에는 종교와 정치, 경제적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1880년대까지 팔 지역 인구 50만명 중 유태인은 2만5,000여명. 아랍과 유태인은 사이 좋게 지냈다. 오스만투르크는 ‘제국의 수입을 늘려주는 부지런한 민족’이라며 유태인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상황이 변한 것은 유럽에서의 유태인 박해. 시오니즘(유태국가건설론)이 일고 팔 지역을 향한 ‘엑소더스’ 행렬로 이어진다. 1894년 ‘디레퓌스’ 사건 후 이민은 가속돼 1914년 팔 지역의 유태인은 8만5,000명에 이른다. 이스라엘 국가를 세워주겠다는 1917년 ‘벨포어’선언은 유태인 인구를 43만명(1936년)으로 불렸다. 영국은 아랍에도 전쟁에 협조하면 팔 지역을 넘겨 주겠다는 ‘맥마흔 서한’(1915년)을 보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나오는 베두인(유목민)부대가 터키군과 신화적인 전투를 벌인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영국이 대안으로 제시한 ‘우간다’를 거부하고 팔 지역을 고사한 유태인들은 결국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한다. 아랍세계는 20여개 국가로 찢어졌다. 유태인은 소망을 이뤘지만 박해와 복수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에굽(이집트)-이스라엘-블레셋-로마-유럽-이스라엘로 한바퀴 돌았을 뿐이다. 인질로 잡힌 세계는 불안에 떨며 공존을 갈망하고 있다. /권홍우ㆍ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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