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마룡리 전원일기<17> 봄이 들어왔다

오래 머물지 않아

더 애달픈 이 계절

향기로운 라일락 나무

욕망이란 이름의 튤립

그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작년 가을에 땅을 파고 묻은 튤립 구근. 강인한 생명력을 증명하듯 매혹적인 꽃잎을 피워냈다.작년 가을에 땅을 파고 묻은 튤립 구근. 강인한 생명력을 증명하듯 매혹적인 꽃잎을 피워냈다.


기대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뜻밖의 소식은 늘 설레게 한다.

한동안 잊고 지낸 그 시간들을 위로하듯.


지난해 가을쯤 큰 기대 없이 튤립 구근을 심었다. 구근 하나에 몇 천원 쯤 한 것 같은데 와이프의 집요함(?)에 마당 한 구석에 구멍을 몇 개 파주었다. 구멍 이래 봤자 옛날 구슬치기할 때의 그 크기정도 밖에 안 되니 큰 힘 쓸 필요도 없어 선심 쓰듯 거들었다. 그런 후 시간은 흘러 올해 3월쯤 땅을 뚫고 초록 싹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 한두 개 올라오더니 주변에 우후죽순 생겨났다.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4월의 끝자락이자 봄의 절정인 이때 튤립은 매혹적인 색깔의 꽃잎을 마구 뽐내고 있다. 수세기 전 황소 몇 백 마리를 팔아야 가질 수 있었다던 꽃을 이렇게 쉽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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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나무의 꽃잎,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향기로움이 그윽하다.라일락 나무의 꽃잎,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향기로움이 그윽하다.


이 붉은 꽃의 나무는 지금도 정확한 이름을 모른다. 모르면 모르는 채로 가만히 볼 뿐.이 붉은 꽃의 나무는 지금도 정확한 이름을 모른다. 모르면 모르는 채로 가만히 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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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가지만 있던 나무에서 피어나는 라일락 향기는 또 어떤가. 황매화도 ‘이젠 내 차례’라며 노란 꽃망울을 틔울 채비를 하고 있다. 다음은 장미, 철쭉이...

겨우내 꽁꽁 언 땅 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스스로 생명활동을 이어가는 그 강인함에 감탄할 뿐이다. 그래서 엘리엇은 ‘황무지’란 시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한 걸까. 만물이 그 치열함을 이겨내며 생존의 몸부림을 치는 모습이 어쩌면 더 잔인한 광경이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어버린 겨울이 참 따뜻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봄에 와야 이름이 호명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최남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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