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처음으로 30대 당수가 선택하면서 반세기 전 '40대 기수론'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국민의힘이 30대 이준석 대표를 선택한 것이 여러모로 반세기 전 신민당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40대 기수론은 1971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야당인 신민당에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제기해 정치권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1969년 42세이던 김 전 대통령은 공화당 정권의 3선 개헌 이후 무력감에 빠져 있던 야당이 정권교체를 위해 젊은 지도자를 내세워야 한다며 후보 지명전에 도전했다.
당시 신민당 유진산 총재 등 원로들은 '구상유취(입에서 젖비린내가 난다)'라며 무시했지만 40대 기수론은 지지를 받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40대인 김대중 이철승 의원의 출마를 추동하면서 대선후보 경선은 40대의 3파전 형세로 이뤄졌다.
결국 결선투표 끝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YS가 첫 깃발을 든 40대 기수론은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정치적 사건이 됐다.
'박근혜 탄핵사태'로 표류하던 국민의힘은 4·7재보선에서 압승을 거둔 데 이어 30대 정치인을 통해 정권교체를 꿈꾸고 있다.
다만 '이준석의 파란'이 과거 40대 기수론처럼 세대교체의 신호탄이 될 지는 향후 이 대표의 행보에 달렸다.
/박우인 기자 wi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