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통상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 ‘관세 도박’에 주사위를 던졌다. 백악관 행정명령 부속서에 명시된 한국의 상호관세율은 26%로, 미국 시장에서 주로 경쟁하는 일본(24%)보다 높다.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20개국 중에서도 가장 높은 세율이다. 이로써 한미 FTA는 사실상 무력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9일(현지 시간) 발효를 앞두고 1주일간 전 세계의 치열한 협상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국정 공백 상태인 한국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 등을 활용해 한국을 비롯한 67개국에 상호관세를, 나머지 모든 국가들에 5일부터 10%의 기본관세(보편관세)를 물리겠다고 밝혔다. 상호관세를 부과한 나라들을 ‘최악의 침해국(worst offenders)’으로 지칭한 트럼프 대통령은 각국이 미국에 매긴 관세를 추정하고 해당 수치의 절반에 해당하는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국가별 상호관세율은 베트남 46%, 태국 36%, 대만 32%, 인도 26%, 유럽연합(EU) 20%였다. 중국의 경우 34%가 부과돼 기존의 20%를 더해 총 54%가 됐다.
각국이 미국에 부과한 관세의 도출 방법에 대해 미 정부는 “국제무역 정책 관행에서 확립된 방법론을 이용했다”며 환율 조작, 무역장벽 등을 반영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각국과의 무역적자액을 해당국 수입액으로 나눈 단순한 계산법을 활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 등 일부 국가에 대한 관세도 백악관 행정명령 부속서에는 26%,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소개한 차트 패널에는 25%로 차이를 보였다. 미국이 무역적자를 강제로 줄이기 위해 자의적인 방법을 쓰고 수억 달러를 좌우할 관세율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3일 공식 발효한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와 이미 시행 중인 철강·알루미늄 등에 대한 25% 관세는 상호관세에서 제외돼 한국산 자동차 등의 대미 관세는 상호관세와 합산 없이 25%로 확정됐다. 향후 발표가 예상되는 반도체·의약품 등도 상호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26% 관세가 발표된 직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를 열고 “시장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될 경우 가용한 모든 시장 안정 조치를 즉각 시행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