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 하인츠 뮐러 씨는 지난해 한국 여행 마지막 날 저녁에 사찰음식을 접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나물 구절판과 비빔밥을 시켰는데 개인적으로 채식주의자가 아닌데도 정말 맛있었다”며 “고기 마니아들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식사였다”고 평가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채소 기반 한식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3일 조계종에 따르면 올해 1~7월 서울 종로구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에서 사찰음식 만들기 프로그램을 수강한 외국인 관광객은 62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88명)과 비교해 28.4% 증가했다. 조계종 관계자는 “각 대학별 한국어 어학당, 외국인 학생 대상 여름 캠프 등을 통한 단체 예약이 증가했다”며 “올해부터는 아고다 등 온라인 여행사(OTA)를 통해서도 예약을 받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찰음식은 육류·해산물을 완전히 배제하기 때문에 동물성 식품을 일절 섭취하지 않는 비건 기준을 충족한다.
‘채식’과 관련해 ‘1330 관광통역안내’에 접수된 문의도 올해 6월 총 40건으로 전달(24건) 대비 66.7% 증가했다. 지난해 하반기를 통틀어 접수됐던 모든 문의 건수(30건) 보다도 많았다. 영어(96%) 문의가 가장 많았고 대부분이 채식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추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한국 관광공사 측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채식 키워드와 함께 함께 ‘시장’, ‘자연’, ‘건강한’ 등의 연관어가 다수 언급됐다”며 “한국 여행에서 채식·비건의 실질적 소비 경험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채식 전문 한식당 역시 외국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소재한 사찰음식점 ‘산촌’은 손님 60% 이상이 외국인이다. 산촌 관계자는 “채식 인구가 많은 독일 등 서구권에서 많이 방문한다”며 “직원을 뽑을 때도 외국어 능력을 중요하게 본다”고 전했다. 역시 인사동에 위치한 비건 한식당 ‘오세계향’ 역시 70%가량이 외국인 손님이다. 이 식당 관계자는 “동아시아권, 미국·유럽, 이슬람권 등 다양한 국적의 손님들이 골고루 방문한다”며 “한국에 올 때마다 재방문하는 단골 손님들도 많다”고 말했다.
개인·종교적 신념, 건강 등 이유로 채식을 택하는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나물 등 식물성 재료 위주인 한식의 인기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전세계 채식 인구는 약 5억 명으로 추산되며 특히 미국, 유럽 등 구미주 지역에서 증가 추세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외국인 입장에서 ‘한식’은 다른 나라 음식과 비교해 ‘채소 위주’ 이미지라는 강점이 있어 한국은 채식 친화 관광지로 잠재력이 높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각에선 국내에 채식식당의 절대적 숫자가 부족하고 홍보도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식식당임을 외국인들도 쉽게 알 수 있도록 인증 등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연세대 유학생 A씨(19)는 “무슬림으로서 한국에서 마음 놓고 외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비건·할랄 인증이 활성화된다면 한식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