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영동세계국악엑스포 공동조직위원장, 춘향제전위원장 서울아리랑페스티벌 조직위원장,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 한국메세나협회 회장.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이 현재 맡고 있거나 한때 역임했던 직함이다. ‘쵸코하임’ ‘죠리퐁’ ‘크라운산도’ ‘허니버터칩’ 등 달콤하고 고소한 과자를 만드는 제과 전문 그룹 회장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직함들은 그가 예술에 얼마나 큰 애정을 쏟아왔는지를 보여준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후원하는 윤 회장이지만 그 중에서도 ‘최애’는 단연코 국악이다. 국악과 그의 첫 만남은 마치 드라마에서나 나올 것처럼 운명적이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크라운제과가 부도를 맞자 윤 회장은 법원에 화의(법원의 중재를 받아 채권자들과 채무 변제 협정을 체결해 파산을 피하는 제도)를 신청했다. 죄인의 심정으로 북한산에 올라 어느 바위에서 마음을 추스르고 있을 때 어디선가 구슬프면서도 청아한 대금 가락이 들려왔다. 그 순간 놀랍게도 좌절과 분노로 가득 찼던 그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소위 요즘 아이돌 팬들이 말하는 ‘덕통사고(교통사고처럼 갑작스럽게 마니아가 되는 것)’였다.
1일 경기도 양주의 크라운해태 아트밸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윤 회장은 “크라운제과 부도 위기 당시 대금 소리로 치유를 경험한 뒤 국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며 “이후 국악이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인지, 또 국악의 현실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됐고 그때부터 크라운해태제과의 고객과 국민들이 국악에 관심을 갖고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고 말했다.
‘국악 덕후’ 윤 회장은 다음 달 10일부터 한 달간 충북 영동군에서 열리는 ‘2025 영동세계국악엑스포’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아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악엑스포에 앞서 6월 일본에서 열린 ‘오사카엑스포’를 찾아 국악 공연을 펼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무대에는 크라운해태제과 임직원들과 서울예대 학생들 등 총 130명이 올라 이틀간 총 네 차례의 ‘오사카엑스포 크라운해태 한음회 공연’을 펼쳤다.
현재 크라운해태는 사내에서 약 200명의 직원이 △민요 △사물놀이 △판소리 △가곡 △팔일무(의식 무용) 등 5개의 국악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해당 동아리 직원들이 직접 공연에 나선 것이다. 윤 회장은 “세계 최초로 전통음악을 주제로 엑스포를 개최하는 만큼 이는 한국 전통음악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릴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했다”며 “이 기회를 더욱 살리고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해외에서의 홍보를 위해 오사카엑스포 국악 공연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윤 회장은 국악을 단순히 기업이 문화 예술을 지원하는 사회 공헌 활동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국악과 같은 문화 예술이 기업의 핵심 경영 전략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슷한 제품이 경쟁하는 시장에서 고객은 예술적 감성이 담긴 제품을 원하는 만큼 예술을 경영의 한 축으로 삼아야 미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시대”라며 “예술적 안목을 키워야 좋은 신제품이 나오고 고객의 행복을 위한 마케팅으로 예술을 활용할 때 기업 발전도 가능하다고 확신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한국 기업의 기술력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 변별력이 크지 않은 만큼 모든 기업과 직원들이 예술적 감성을 갖춰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제품을 예술적으로 만들기 위해 직원들 또한 예술가가 돼야 하는데 즐기는 수준을 넘어설 때 예술을 통한 창조적 아이디어를 발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윤 회장은 예술을 제품에 반영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예스’와 ‘쿠크다스’다. 그는 아무런 무늬가 없어 다소 밋밋했던 쿠크다스에 물결 문양을 추가했고 오예스 포장지에는 고(故) 심영보 작가의 장미꽃 작품을 그려 넣었는데 실제로 매출이 급증하는 효과를 냈다. 윤 회장은 “쿠크다스에 입혀진 물결 문양이 굉장히 단순해 보이지만 모양과 그 두께를 조금씩 달리하는 등 수많은 수정 작업을 거친 결과물”이라며 “아주 작은 디테일이 소비자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음악 발효’도 예술을 반영한 사례다. 크라운해태는 ‘맛동산’과 ‘아이비’의 반죽 발효 과정에 각각 국악 22시간과 클래식 음악 80시간을 들려주는 음악 발효 공정을 적용하고 있다. 그는 “음악이 주는 미세한 진동이 미생물의 활동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효과가 있다”며 “미생물의 효모 작용이 활발해져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씹을수록 더 고소한 과자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악을 후원해왔다. 2007년 민간기업 최초로 국악 관현악단인 '락음국악단'을 창단했으며 스스로 직접 리더를 맡기도 했다. 2010년부터는 국내 최정상급 국악 명인으로 구성된 ‘양주풍류악회’의 공연을 개최해왔다. 양주풍류악회는 올 6월 108회째 공연을 열 정도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밖에 ‘창신제’와 ‘크라운해태 한음회’ ‘대보름명인전’ 등 다양한 국악 공연도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 윤 회장은 “국악인이 많지만 대중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어 발전이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특히 국악은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공연장에서 공연을 보고 느껴야 그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만큼 이 같은 기회를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국악의 보전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국악은 우리가 ‘본류’이기 때문에 잘 지키기만 하면 저절로 세계 톱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만큼 보전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젊은이들이 지금은 국악을 즐기지 않지만 우리의 DNA에 국악이 존재하는 만큼 세계인이 와서 즐길 수 있도록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음악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만큼 우열을 가리는 것을 지양할 것도 주문했다. 그는 “그 나라의 고유한 특성과 특유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 바로 전통음악"이라며 "모든 음악은 좋은지 나쁜지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다른 것일 뿐이고 한 나라의 전통음악은 그 나라 사람에게 가장 잘 맞는 옷과 같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국악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초등학생 교육 과정에 국악을 담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서양 음악 위주로 구성된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국악이 포함되도록 국악계 인사들과 함께 관련 교육기관 등을 설득하는 작업을 벌인 것이다. 이 같은 활동에 교육계가 마침내 응답하면서 2015년 교육과정에 국악 관련 내용 의무 편성이 결정됐고 2017년 관련 내용이 담긴 음악 교과서 8종이 출간되는 결실을 보였다.
미래 국악인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국악 영재들을 선발해 공연의 기회를 제공하는 ‘영재한음(국악)회’가 대표적이다. 2015년부터 크라운해태가 개최하기 시작한 영재한음회는 이미 240회 이상의 공연이 진행됐다. 윤 회장은 “어릴 때부터 국악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국악을 편성하도록 힘써왔다”며 “특히 국악 인재들이 큰 무대에 설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해 공연을 열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 회장은 매주 일요일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열리는 이 공연을 놓치지 않고 직접 관람할 정도로 애정을 쏟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현재 그는 학생들이 국악의 장단을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장단기’를 개발하고 있다. 장단기는 리듬게임의 원리를 적용한 게임기로 국악 장단에 맞춰 기계의 버튼을 터치함으로써 ‘굿거리장단’ 등을 쉽게 익히게 한다. 출시 후 수정을 거듭하면서 현재 4버전까지 개발됐는데 남산국악당에 설치돼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체험할 수 있다. 윤 회장은 “4버전보다 기능을 더 업그레이드한 5버전의 개발이 거의 완료돼 영동국제엑스포 행사장에 내놓을 예정”이라며 “전국 초등학교에 최소 1대의 장단기를 보급하는 것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He is…
△1945년 경기 이천 △서울고, 연세대 물리학과, 고려대 경영대학원, 국제산업디자인대학원, KAIST 지식경영최고경영자 과정 △1971년 크라운제과 이사 △1995년 크라운제과 대표이사 △2003년 석탑산업훈장 수훈 △2005년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2011년 제81회 춘향제전위원장, 제20회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수상 △2013년 한국메세나대회 문화공헌상 수상 △2014~2016년 서울아리랑페스티벌 조직위원장 △2015년 서울 오픈아트페어 조직위원장 △2016년 한국메세나대회 메세나인상 수상 △2018~2021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 △2024년 한국메세나협회 회장 △2025년 영동세계국악엑스포 공동조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