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원조 부촌’이라 불리는 광진구 워커힐 아파트 재건축이 3년 만에 다시 추진되기 시작했지만 곧바로 잡음이 커지고 있다. 1·2단지를 분리 재건축하려는 단체와 통합하려는 단체가 동시에 움직이면서 갈등이 법적 다툼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워커힐 아파트 재건축은 사업성이 월등히 높다고 평가되지만, 주민 이견으로 인해 당분간 진통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2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워커힐아파트 1단지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 설립 추진위원회는 22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 ‘워커힐아파트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를 상대로 업무 방해 금지 등 가처분을 신청했다. 1단지 추진위는 워커힐아파트 14개 동 가운데 11개 동만 분리 재건축을 하자는 단체로, 이달 10일 광진구로부터 추진위 설립 승인을 받았다.
반면 추진준비위는 1·2단지 통합 재건축을 주장하는 단체지만 법적 지위를 갖추지는 못했다. 이들은 지금 상태로도 홍보 활동을 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보고 18일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계 설명회를 진행했는데, 분리 재건축 측은 이를 문제삼고 있다. 1단지 재건축 추진위의 한 관계자는 “이미 법적으로 승인받은 정식 추진위원회가 있는데 또 다른 단체가 활동하는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며 가처분 신청 이유를 밝혔다.
워커힐아파트 재건축을 둘러싼 잡음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워커힐아파트는 1단지 432가구(11개 동)가 1978년, 2단지 144가구(3개 동)가 1980년에 입주했다. 실질적으로는 같은 단지이고 입주 시기만 다르기에 1차, 2차로도 불린다. 이 아파트는 용적률이 108%에 불과하고 전용면적 162~226㎡의 대형 주택형으로만 구성돼 재건축 사업성이 높다. 1대1 재건축 시 일반분양 비율이 40% 이상으로 예상되는 데다가 과거 서울 최고급 아파트였다는 명성도 있어 재건축 얘기가 꾸준히 나왔다.
문제는 각 단지의 용도지역이 달랐다는 점이다. 1단지는 2종일반주거지역이지만 2단지는 자연녹지지역으로 용적률이 최대 100%에 불과해 재건축이 불가능했다. 이에 1단지 분리 재건축 측은 2022년 1단지만 용적률 215%의 982가구로 따로 재건축하는 내용의 정비계획안을 공람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1·2단지가 각종 기반시설을 공유하는 만큼 분리 재건축에 대한 2단지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보완 지시를 내려 재건축이 멈춰섰다.
약 3년이 흐른 지금 재건축이 다시 추진되는 것은 용도지역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2023년 광진구는 시의 지적을 보완하기 위해 2단지 재건축 시 2종일반주거지역으로 종상향하는 내용의 지구단위계획 용역을 시작했고, 최근 막바지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연내 지구단위계획이 확정되면 2단지도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는 셈이다. 실제로 5월 시·구 회의에 보고된 지구단위계획 초안에는 1·2단지를 통합재건축하는 방안과 분리재건축하는 방안이 모두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통합과 분리 재건축 양측의 움직임이 동시에 본격화한 것이다. 분리 재건축 측은 따로 사업을 진행하면 속도가 더 빠르다는 점, 2단지와 통합할 경우 용도지역 상향에 따른 공공기여 부담이 커진다는 점 등을 내세우고 있다. 이미 1단지와 상가의 토지 등 소유자 482명 중 58%(279명)의 동의를 받은 것도 비교 우위로 꼽힌다.
반면 통합 재건축 측 관계자는 “통합 재건축을 해야 단지의 완성도가 높아져 주민 자산 가치 향상에도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미 추진위원회가 있는 만큼 이들이 추진위원회를 또 설립하는 것은 법적으로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때문에 통합 재건축 측은 조합직접설립 제도를 통해 추진위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조합을 설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인허가청인 서울시는 주민 의견이 모아지는 것에 맞춰 재건축을 심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법적인 요건을 갖춘 재건축 사업이라면 분리든 통합이든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워커힐아파트 재건축의 향방은 법원의 가처분 판단이 어떻게 나오는지, 향후 주민들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에 달려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