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취직할 거니’라는 말, 이제 그만 듣고 싶어요.”
취업준비생 A씨(27)는 이번 추석 연휴가 달갑지 않다. 최장 10일의 황금연휴지만, 그에게는 휴식이 아니라 ‘잔소리 풀코스’가 기다리는 시간이다. 그는 “밥상머리에 앉는 순간 메뉴는 잡채, 갈비찜, 그리고 ‘취업은?"으로 정해져 있다”며 “차라리 서울 원룸에 남아 자기소개서를 쓰는 게 낫다”고 털어놨다.
청년 고용은 내리막…"명절 잔소리는 관심 아닌 압박"
명절은 본래 가족과 함께하는 ‘쉼’의 시간이지만, 취준생들에게는 오히려 심리적 전쟁터다. 친척들의 잔소리와 비교, 기대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고향에 다녀오면 더 지쳐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취업 플랫폼 캐치 설문(구직자 1925명)에 따르면, 최악의 명절 잔소리 1위는 “취업은 언제 하니”(38%)였다. 그 뒤로는 “살이 좀 쪘다”(16%), “누구는 벌써 취업했다더라”(14%), “졸업은 언제 하니”(9%) 등이 꼽혔다.
실제 현실도 녹록지 않다. 통계청의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청년층 취업자는 전년보다 20만 명가량 줄었고, 고용률은 45.1%로 1.6%포인트 하락했다. 16개월 연속 내리막이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서도 하반기 대기업 채용의 79.5%가 수시채용, 공개채용은 20.5%에 불과했다. 경력자 중심의 수시채용이 늘어나면서, 신입 취준생의 기회는 갈수록 줄어드는 셈이다.
“취업 문이 좁아진 상황에서 ‘언제 취직하니?’라는 질문은 관심이 아니라 압박”이라는 청년들의 하소연은 괜한 말이 아니다.
명절 잔소리 메뉴판·티셔츠 ‘화제’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명절을 앞두고 온라인에서는 어김없이 ‘명절 잔소리 메뉴판’과 이를 디자인으로 제작한 티셔츠가 화제다. “언제 취직할 거니?”, “눈 좀 낮춰라”, “요즘 같은 세상에 결혼은?” 같은 문장들이 ‘세트 메뉴’처럼 나열돼 있다.
누리꾼들은 “전국민 공통 교과서”, “물가 오르듯 잔소리도 업데이트된다”며 자조 섞인 반응을 보인다. 취준생들에게 명절은 더 이상 휴식이 아니라, 사회적 비교가 차려지는 밥상임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알바·취업준비가 낫다”…귀향 포기하는 청년들
취준생들은 긴 연휴에도 쉴 틈이 없다. 현대자동차그룹은 10월 1~17일, LG유플러스는 9월 26일~10월 12일 신입 채용을 진행한다. 대기업 공채가 점점 사라지는 상황에서, 이런 일정은 놓치면 안 되는 기회다. 또 다른 취업준비생 B씨(25)는 “힘들게 표를 구해 내려가 잔소리 듣느니, 차라리 집에 남아 채용 공고 준비를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일부 청년들은 아예 귀향 대신 아르바이트를 택한다. 선물세트 포장, 마트 행사 도우미, 편의점 야간근무 등 단기 알바 공고는 추석 전후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여행은 사치라서 연휴 내내 알바한다”, “돈 버는 게 잔소리 듣는 것보다 낫다”라는 말이 나왔다.
“잔소리 대신 ‘힘내라’ 응원 한마디면 충분”
캐치에 따르면 취준생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취업 준비하느라 고생 많아”(22%)였다. 이어 “너의 선택을 존중해”(16%), “연휴에는 푹 쉬어”(15%), “다 잘될 거야”(11%) 등이 뒤를 이었다.
결국 취준생들이 원하는 건 거창한 조언이 아니다. B씨는 “사실 필요한 건 ‘힘내라’는 말 한마디”라며 “그 말이면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긴다”고 했다. 명절이 더 이상 ‘심문 자리’가 아니라 쉼표가 되려면, 잔소리 메뉴판 대신 응원과 격려의 메뉴판이 상 위에 올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