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네덜란드 반도체 업체 넥스페리아 수출통제를 완화하면서 완성차 업계의 공급망 혼란이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다만 양국이 경영권 문제를 두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언제든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현지 시간) 마로시 셰프초비치 유럽연합(EU) 통상 담당 부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중국 상무부가 민간용으로 신고된 넥스페리아 칩의 수출 면허 요건을 면제하기로 했다”며 “결정 효력은 즉시 발생한다”고 밝혔다. 상무부는 지난달 말 미중 정상회담에서 수출통제를 해제하기로 합의한 후 개별 기업 단위로 면제 신청을 받아 허가를 내줬는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절차 추가 간소화에 합의한 것이다. 중국 상무부도 같은 날 성명을 내고 “네덜란드 경제부의 협상단 방중 요청을 승인했다”며 추가 협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2019년 중국 윙테크에 인수된 넥스페리아는 와이퍼·창문 조작 등 차량의 기본 작동에 필요한 범용 반도체 분야에서 전 세계 1위를 다투는 회사다. 기술이 단순하고 단가도 낮지만 완성차 한 대당 넥스페리아 칩 500여 개가 들어가는 만큼 공급 중단 시 공급망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 네덜란드가 올 9월 기술 유출의 우려를 내세워 경영 통제에 나서자 중국은 지난달 초부터 자국 공장 내 넥스페리아 제품 수출을 금지하며 맞불을 놓았다. 넥스페리아 칩 후가공 작업의 80%가 중국 내 공장에서 이뤄지는 만큼 중국이 빗장을 걸어 잠그면 전 세계 공급망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겨냥한 조치였다.
이후 판세는 중국의 계산대로 흘러갔다. 일본 혼다·닛산, 독일 폭스바겐 등 주요 업체들이 줄줄이 감산에 나서면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반도체 공급난이 재연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업계 전반에 퍼졌다. 혼란이 확산되자 네덜란드 정부는 중국이 핵심 반도체 수출을 재개할 경우 넥스페리아에 행사 중인 경영 통제 명령을 철회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며 한발 물러났다. 중국이 일단 수출 재개에 합의하면서 전 세계 완성차 업체들은 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독일 현지 매체에 따르면 독일 자동차 부품 업체 아우모비오는 수출통제 대상에서 제외됨에 따라 근로시간 단축 계획을 철회하기로 했다. 혼다 역시 북미 공장 감산을 중지하고 생산 정상화에 나서기로 했다.
다만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네덜란드의 방중 요청을 수락했다면서도 “네덜란드 정부가 중국 기업의 합법적 권익 침해를 시정해야 한다”며 비판을 이어갔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윙테크는 “넥스페리아 중국 공장의 수출 재개 합의에는 해임된 장쉐정의 CEO 복귀와 경영권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고 네덜란드 정부에 요구했으나 네덜란드 측은 “장쉐정의 행동은 넥스페리아의 생산 역량과 지식재산 지속성에 심각한 위협을 가했다”며 선을 긋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