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IN 사외칼럼

아르헨 중고 F-16으로 본 국가의 자존심과 현실 [박선태의 중남미 이슈와 문화]

박선태 중남미 전문가(중남미에서 외교관으로 27년 근무)





국가의 영공을 지키는 일은 어떤 정치적 이념이나 경제 위기보다 앞선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기본 원칙을 지키지 못한 대표적 국가였다. 경제 회복이 더 시급하다는 사회적 인식, 말비나스 전쟁의 상처, 군부 독재에 대한 불신이 겹치며 국방은 정치적 관심에서 밀려났다. 그 결과 전투기를 보유하고도 제대로 띄울 수 없는, 형식적 공군만 존재하는 상태가 수십 년 지속되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최근 덴마크 공군이 운용하던 중고 F-16 전투기 6대가 아르헨티나에 도착했다. 이는 총 24대 구매 계약 중 첫 인도분이다. 밀레이 대통령은 이 전투기들을 “국민을 지키는 천사들”이라 부르며 “오늘부터 아르헨티나가 조금 더 안전해진 날”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수사처럼 들리지만, 지난 40년의 공백을 돌아보면 결코 가벼운 표현이 아니다. 말비나스 전쟁 이후 아르헨티나는 군에 대한 투자를 사실상 멈췄고, 그 결과 조종사 양성은 중단되다시피 했으며 노후한 기체는 사고와 부품 부족으로 퇴역했다. 공군력의 붕괴는 국가 자존심의 문제를 넘어 주권 기능 자체가 흔들린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도입은 냉혹한 경제 현실과 맞물려 있다. 아르헨티나는 극심한 인플레이션, 부채 상환 압박, 국제 금융시장의 신뢰 부재 속에서 긴축에 의존해 국가 재정을 유지하고 있다. 최신형 4.5세대 전투기나 5세대 기종은 선택지조차 될 수 없었다. 가격뿐 아니라 장기 운용비, 정비·훈련 체계까지 감당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결국 F-16은 현실적으로 접근 가능한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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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주변국과의 비교에서 드러난다. 콜롬비아는 최근 덴마크·스웨덴 Saab사의 Gripen E 15대, Gripen F 2대 도입 계약을 체결했고, 페루 역시 24대 규모의 신형 전투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브라질은 이미 스웨덴과 Gripen을 공동 생산해 배치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화 흐름 속에서 아르헨티나가 40년 된 4세대 기종을, 그것도 중고로 도입해야 하는 상황은 국가적 자존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신형과 중고 전투기가 맞붙었을 때의 성능 격차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국방에서 중요한 것은 ‘가장 좋은 선택’이 아니라 ‘가능한 선택’이다. F-16은 세계 26개국에서 운용되는 검증된 플랫폼이며 유지비가 상대적으로 낮고 정비체계가 안정적이다. 아르헨티나의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 안에서 최선을 다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무기 금수 조치로 인해 부품 하나까지 영국산 여부를 확인해야 했던 구조적 제약 속에서, 중고 F-16 도입은 합리적 해법이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구매 대금의 5년 무이자 분할 조건은 극도로 열악한 재정 여건을 감안할 때 이례적으로 유리한 계약이다.

물론 전투기만 들여온다고 공군이 재건되는 것은 아니다. 조종사 양성, 정비 인력 훈련, 기지 인프라 개선, 안정적 국방 예산 구조 등 뒤늦게 무너진 모든 요소를 다시 세워야 한다. 장비는 시작일 뿐이며, 국방은 결국 사람과 체계가 만든다. 경제가 회복되어야 군사력도 회복된다. 전투기는 국가 체력의 결과이지, 그 자체가 체력을 대신할 수는 없다.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위기에 놓여 있지만, 동시에 거대한 잠재력을 지닌 나라이다. 농업과 광물 자원, 젊은 인구, 문화적 영향력은 이 나라가 다시 일어설 기반이 될 수 있다. 이번 F-16 도입이 굴욕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정상국가로 돌아가기 위한 첫 단추가 되기를 바란다. 언젠가 아르헨티나가 자존심이 아니라 능력으로 자신의 하늘을 지키는 날이 다시 오기를, 중남미를 오래 지켜봐 온 한 사람으로서 조용히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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