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국가 간 전략기술 경쟁의 핵심이 인재 확보 전략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략 분야인 인공지능(AI)·반도체·양자 등의 기술 난제가 하드웨어보다 알고리즘과 시스템 설계에 집중되어 핵심 지식과 설계 역량을 보유한 소수의 최고급 인재들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올 초 OpenAI의 챗GPT가 독점하던 시장에 중국의 딥시크 모델의 등장은 글로벌 AI 경쟁구도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자 우수한 인재 특히 리더급 연구자 확보의 중요성을 알린 사건이었다.
최근 글로벌 인재 시장은 기존 질서가 변화하면서 선진 국가들의 인재 확보 경쟁이 좀 더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전 세계 인재들을 흡수하는 미국이 비자 정책을 강화하고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하자 연구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져 우수한 인력들의 미국 이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유럽, 일본, 중국 등은 이 기회를 살려 국내적으로는 우수한 인재 양성 지원에 정책적 집중도를 높이면서 해외의 우수 인력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과 제도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해외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한 개방성과 환경 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이다. 더욱이 핵심 전략분야인 AI 인재가 순유출되는 등 고급 인재의 유출(브레인 드레인)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연구자들이 해외로 나가는 이유로는 일자리 부족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우수한 박사 학위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일자리가 수요에 비해 부족한 것이다. 고급 인재들에 대한 보상 수준도 기대에 미치지 못해 국내 기술 관련 일자리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높지 못한 점도 작용한다. 거기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우리나라만의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영향을 미친다. 즉, 여타 분야에 비해 과학기술분야 리더들의 사회적 위상과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높지 못한 것이다.
국내 연구개발 분야에서 리더 연구자는 특정 전문분야에서 연구실적이 우수한 스타 과학자 중심으로 정의되어 지원되고 있다. 그래서 연구실적이 우수한 리더 연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하지만 대규모 연구개발 프로그램이나 분야별 전략을 책임있게 지휘할 수 있는 감독급 리더는 지극히 부족한 상황이다. 분야별 과학적 성과가 기술과 산업경쟁력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기술과 정책, 산업을 연계해 비전과 전략을 설계할 수 있는 감독급 리더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분야별 전략 리더들이 부족하다 보니 국가전략과 기술을 연계할 수 있는 상위 전략적 리더가 부재하고 대개는 학습과 경험이 부족한 정치과학자들이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은 과학기술분야의 정치적, 사회적 역할 부족으로 이어지고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위상과 영향력이 기대만큼 높지 못한 원인이 된다.
연구개발 리더십은 개별과제나 연구실 단위를 넘어 연구기관 운영, 기술분야별 전략 수립과 국가혁신 전략 및 비전 수립까지 전 단계에서 역할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로 국내 과학기술인의 리더십 범위는 과제나 사업단위, 권한과 책임이 제한된 PM(Project Manager)과 같은 하위 거버넌스 수준에 머물고 있다. 주된 벤치마킹 대상인 미국 국방부의 DARPA(Defenc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사례 학습도 PM 수준의 리더십에만 관심을 둘 뿐 임무와 전략을 설계·관리하고 PM을 선정·관리하는 상위 감독(디렉터) 리더십에 대한 정책적 관심은 부재하다. 나아가 공공 연구기관의 기관장도 관리형 리더십에 머물다 보니 전략적 리더십이 기관장 선정시에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연구자의 연구역량이 뛰어나더라도 리더십이 자동적으로 길러지지는 않는다. 특히 감독급 리더가 되려면 특정 세부 분야 전문성보다 다양한 기술을 판단할 수 있는 종합적 감각과 미래 기술 비전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거기에 국가 정책목표와 기술과 산업을 연계하는 역량, 연구환경 조성과 조직 외부 자원을 전략적으로 결합하는 역량도 필요하다. 이러한 것을 키우려면 리더십 양성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 운영뿐만 아니라 연구 생태계의 자율적 운영 역량을 높여 감독형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리더십 학습과 경험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지금의 과학기술계 리더십 문제는 한국 축구계와 유사한 점이 많다. 우수한 인재는 많지만 뛰어난 감독이 잘 보이지 않으며 감독급 인재를 체계적으로 키우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상존한다. 연구 현장은 우수한 리더십 역량을 보유한 감독을 원하고 있지만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크다. 감독급 리더들이 제대로 역할을 할 때 연구와 혁신성과 제고뿐만 아니라 연구생태계의 발전,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위상도 변화될 수 있다.
국가 상위 거버넌스에서 전략 리더십 부족이 지속되면 국가전략 분야의 혁신경쟁력 저하로 기술패권 대응 능력 확보가 어려워진다. 과학기술 인재에 대한 통합적 접근과 함께 우수한 선수 양성을 넘어 감독 및 전략가 리더 확보를 위한 국가인재 전략의 대전환이 시급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