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의 원래 이름은 지역 명칭을 딴 ‘부르즈 두바이’였다고 한다. 2010년 이 건축물의 완공 직후 두바이 정부는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었다. 두바이는 같은 나라의 이웃이지만 경쟁자였던 아부다비의 긴급 지원으로 파산을 면하는데 그 대가가 건물 이름의 교체였다. 새 이름은 아부다비의 수장인 셰이크 칼리파 빈 자예드 알 나하얀의 이름을 땄다. 두바이로서는 원통한 일이었겠지만 UAE의 최고 도시를 노리던 야망이 견제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부르즈 칼리파’의 높이가 828m로 된 사연도 흥미롭다. 처음부터 부르즈 칼리파는 ‘모든 건물보다 더 하늘에 가까운’ 세계 1위 높이 건축물을 겨냥했는데 당시로는 700m 이상이면 됐다고 한다. 문제는 같은 두바이에 무려 1410m 높이의 ‘괴물’ 나킬 타워가 계획 중이었다는 사실이다. 부르즈 칼리파는 최종 높이도 정하지 않은 채 공사를 시작했고 설계를 계속 수정하며 위로 올라갔다. 나킬 타워 계획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무산되자 드디어 부르즈 칼리파도 멈췄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828m였고 현재도 세계 최고 높이다.
세계의 초고층 건물을 언급할 때 두바이만 해도 이렇게 많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신간 ‘초고층’은 초고층 구조설계의 세계적 권위자로 CNP동양 대표인 저자가 30년 이상 건축구조기술사로 국내외 초고층 프로젝트에 참여해 오며 느낀 이른바 마천루(摩天樓·Skyscraper)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마천루가 단지 자본과 기술의 집합체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 속에 도시의 욕망과 한계, 시대의 경제 상황, 독특한 문화적 맥락과 상징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신화 속의 바벨탑을 포함해 시대가 바뀌면 초고층에 대한 가치도 바뀐다.
세계사에 처음 등장한 초고층은 1931년에 완공된 443m 높이의 미국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었다. 미국이 대공황에 진입한 직후에 계획됐다. 속도전을 벌여 착공부터 완공까지 단 410일이 걸렸는데 이는 당대의 최신 기술을 총동원하고 최대한 규격화된 자재를 사용해 구조적 효율성과 공정 계획이 빈틈없이 진행된 결과였다. 영화 ‘킹콩’에 등장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뉴욕이라는 도시의 영원한 상징이 됐다.
1998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세워진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높이 451m로 당시 초고층 랭킹 1위를 차지하며 앞서 100년 가까이 이어진 서구 중심의 고도 경쟁에 아시아의 이름을 내민 사례다. 현재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쌍둥이 빌딩의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긴급 상황시 두 타워 사이에서 재난 대피 경로 역할을 하는 스카이브릿지가 특징인데 두 건물에 완전히 고정되어 있지 않고 부유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지진이나 강풍 발생시 구조적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이외에도 미국 시카고의 시어스타워, 중국 상하이의 상하이타워와 세계금융센터, 대만의 타이베이101, 일본 도쿄의 스카이트리, 영국 런던의 30세인트메리액스 등 주요 초고층 건물이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등장한다.
한국 사례도 풍부하다. 높이 555m로 세계 초고층 랭킹 6위인 롯데월드타워는 당초 아래는 사각형이고 위는 원형인 ‘첨성대’ 형태로 계획됐다가 공사비 급등과 시공 현실성의 한계에 부딛혀 수차례의 디자인 변경 끝에 단순하면서도 시공이 가능하며 한국적 미감을 살린 지금의 ‘붓’ 형태로 최종 결정됐다. 삼성그룹 주도로 전자 디지털 복합단지 조성과 함께 계획된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특혜 논란으로 무산되자 대신 들어서 초고층 주상복합이자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가 된 타워팰리스 이야기도 흥미롭다.
초고층 건물을 가능하게 한 콘크리트와 철골의 진화, 엘리베이터의 발달, 건물 외벽의 커튼월과 더블스킨 구조, 공중에서 여러 타워를 잇는 스카이브릿지, 초고층의 얼굴인 창을 닦는 시스템 BMU까지 마천루를 가능하게 만드는 재료와 기술에 대한 설명도 풍부하다.
저자는 앞으로도 초고층 건물이 세워지겠지만 그 가치는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철근 콘크리트의 수명이 겨우 100년이라는 점은 이런 초고층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과거의 초고층이 도시의 권력과 경제력의 상징이었다면 오늘날 초고층은 기후와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얼마나 오래, 어떻게 변화하며 살아 남을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1만 9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