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북스&] 민영화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망치나

■모든 것들의 민영화(도널드 코언·앨런 미케일리언 지음, 북인어박스 펴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미국 시카고시는 주차료 징수기 3만 6000대의 현대화에 필요한 11억 6000만 달러를 어떻게 마련해야 하냐는 문제에 봉착했다. 이때 등장한 구원 투수가 민간 투자가 모건스탠리 컨소시엄이었다. 이들은 비용을 도맡는 대신 향후 75년간 주차료 징수기에 대한 통제권을 요구했고 시는 조건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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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시가 ‘당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건스탠리는 주차료 징수기 사업으로 11년 만에 16억 달러를 벌었고 앞으로도 64년간 견제 없는 이익을 누릴 것이다. 잃어버린 미래 수익은 시카고가 치러야 할 대가의 가장 작은 부분이었다. 투자가들은 주차료 수입이 줄어들 수 있는 모든 정책·변화에 대해 시가 손실을 보전하도록 계약서에 썼다. 버스전용차도나 대중교통 확장처럼 공익을 추구하려는 시의 모든 시도에 저항할 막강한 권한을 민간에 넘겨준 셈이다.

사람들은 흔히 민영화를 단순히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기업에 위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비효율 대신 시장의 효율을 추구하는 ‘선택의 문제’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저자들은 민영화를 공공재에 대한 통제권을 민간의 손에 넘기는 것으로 정의한다. 다시 말해 정부가 가진 권력의 일부를 민간에, 선출되지 않았고 책임지지 않으며 속을 알 수 없는 기업에 넘기는 결정이라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공적 권리의 주체인 시민들은 더 많은 비용을 쓰면서도 통제력은 없는 일개 ‘소비자’로 전락한다. 민주주의의 후퇴도 필연적이다.

책은 상수도·교육·보건·데이터·사회복지 등 필수 공공재가 시장으로 넘어간 미국 사회의 지난 수십 년을 광범위하게 들여다보며 책임 없는 민간 권력이 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어떻게 잠식해갔는지를 추적한다. 오늘날 정부 부채 문제 등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민영화를 시도 중인 한국 사회에도 낯설지 않은 사례들이 가득하다. 민영화 사례를 단순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공재란 무엇이며 민주주의는 어떤 조건에서 작동하는지를 숙고하게 하는 질문들도 이어가며 공공성 회복에 대한 당위를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2만 4000원.


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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