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3세인 김인자 한국심리상담연구소장(서강대 명예교수)은 국내 최고령 심리 상담 전문가다. 1965년 연구소를 설립한 후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3000명에 가까운 상담가를 배출한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보청기 없이도 대화에 불편함이 없고 여전히 강단에 서며 상담가를 길러내고 있다. 김 소장은 2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몸과 마음은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생각이 건강하면 몸도 건강하다”며 “나이가 들면 힘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일을 하면서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미소 지었다.
김 소장은 국내에 ‘상담심리학’을 처음으로 뿌리내린 인물이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그는 원래 의료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러나 1960년 서강대로부터 심리학 관련 강의를 요청받으면서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김 소장은 “당시 한국에는 정신분석학만 있었고 학생을 위한 상담, 일상적인 삶을 다루는 상담심리학은 없었다”며 “미국 유학 시절 교양과목으로 심리학을 접했는데 서강대에서 상담심리학 강의를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파고들었다”고 회고했다.
그가 평생 강조해온 핵심 개념은 바로 ‘공동 성장’이다. 상담·교육·인간관계 모두 공동 성장이라는 원칙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게 김 소장의 지론이다. 그는 “공동 성장이란 모두가 행복하다는 것을 말하는데 나 혼자만 기분이 좋고 행복한 게 아니라 모두가 긍정적인 마인드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며 “상담심리학에 열정을 바친 것도 모두가 행복하자는 마음이 가장 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이 처음 심리 상담을 했던 1960년대와 지금을 비교하면 상담실을 찾는 사람들의 고민이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생활고와 생계로 인한 심리적 괴로움이 상담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충이 많다. 그는 “한국인의 고민은 ‘생존’에서 ‘관계’로 옮겨왔다고 볼 수 있다”며 “현대인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을 가장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이어 “결국 시대가 달라져도 고민의 본질은 같다고 본다”며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같이 행복해질 것인가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현대 사회가 사람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으로 ‘갈등을 대하는 방식’을 지적한다. 갈등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갈등을 제거하려는 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갈등은 없어지지 않는데 현대인들은 갈등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갈등의 대상을 없애려고 한다”며 “갈등이 생기면 사람 관계를 끊고 차단하는 경우가 많지만 갈등을 상호 성장의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갈등이 반드시 부정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성장할 수 있는 ‘재료’라는 게 그의 상담 철학이다.
김 소장이 평생 지켜온 상담 원칙은 크게 의사소통과 행동 선택, 공동 성장 등 세 가지다. 무엇보다 소통이 전제돼야 하고 자신의 행동은 타인이 아닌 ‘나’의 선택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본인만 편해지는 선택은 결국 관계를 무너뜨린다. 그는 “배우자가 본인에게 함부로 대한다고 해서 똑같이 대응해서는 안 된다”며 “상황을 바꾸려 하지 말고 본인의 반응을 바꿔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상담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김 소장이 가장 먼저 권하는 것은 봉사 활동이다. 봉사를 하면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린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거창한 봉사 활동이 아니라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인사하는 것, 상대방의 기분을 한 번 더 살피는 것 역시 충분한 봉사”라고 설명했다.
지치지 않으면서 조리 있는 말솜씨로 인터뷰를 하는 김 소장에게 건강 비결을 묻자 “특별한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생활하면서 규칙적인 식사를 한다”며 “나이를 먹을수록 영양분 섭취가 중요한데 매일 삼시세끼 잘 챙겨 먹는다”고 전했다.
건강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심리 상담, 상담가 교육과 공동 성장의 철학을 이어갈 계획이라는 김 소장의 목표는 분명하다. 더 많은 ‘좋은 상담가’, 정확히는 ‘효과적인 상담가’를 길러내는 것이다. 그가 93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상담실 문을 여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