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10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시행되면 인수합병(M&A), 사업 매각 등 기업 활동을 위한 전략적 의사 결정도 노조의 감시와 견제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M&A 등은 경영자의 고유 권한인 동시에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주주들의 승인도 필요하다. 하지만 노조는 M&A와 구조조정을 묶어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교섭 결렬 시 합법적으로 파업을 할 수 있게 됐다.
고용노동부는 26일 노동조합법 2조 개정안 해석 지침안을 통해 “투자·합병·분할·양도·매각 등 사업 경영상 결정은 (노사) 단체교섭 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따라 정리해고·배치전환 등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 정리해고에 대한 단체교섭 요구를 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경영계에서는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해석이 가능해 노사 갈등과 법적 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기존 판례에서는 정리해고 실시 여부를 고도의 경영상 결단으로 봐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이제 근로조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으로 판단돼 대상에 포함되는 사례가 늘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는 불분명한 개념으로서 합병 분할 등의 사업 경영상 결정 그 자체가 단체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 기준이 형해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해석 지침은 노란봉투법 입법 전에는 불가능했다. 그동안 법원 판례는 정리해고를 경영상 판단으로 보고 교섭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원과 같은 입장이었던 노동부는 노란봉투법 시행에 맞춰 정리해고를 단체교섭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행정 해석을 바꿀 방침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부가 합병 등 경영상의 결정 자체를 교섭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이행 과정과 ‘이원화’한 방식은 평가할 만하다”면서도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노조는 정리해고와 경영상 결정을 함께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조 5호의 또 다른 쟁점은 노동쟁의를 할 수 있는 근로조건의 결정의 예로 ‘근로자의 지위’가 추가됐다는 점이다. 기존 5호에는 임금, 근로시간, 복지, 해고만 근로조건 결정의 예로 명시됐다. 앞으로 근로자 지위는 노사 교섭의 큰 갈등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제도 신설, 징계 및 승진 제도 기준 마련, 정년 연장 관련 기준 등을 교섭에서 새롭게 요구할 수 있다고 노동부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노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교섭 압박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지적된다.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고 비정규직 노조원을 늘리는 움직임이 활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제도 요구는 해석 지침의 잠복된 변수와 같다”며 “조직화가 우선인 노조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할 지점”이라고 예상했다.
노동부는 다만 노동쟁의가 기존 이익 분쟁에서 권리 분쟁 전체로 확대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권리 분쟁 인정 여부는 노란봉투법의 쟁점 중 하나였다. 현행은 임금 인상, 수당 신설처럼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정하는 이익 분쟁만 노동쟁의로 포함된다. 만일 권리 분쟁까지 인정되면 임금체불, 부당 해고도 노동쟁의가 가능해진다. 상당수 노동법 전문가들은 이 상황이 노사 갈등을 심화할 수 있다고 반대해왔다. 노동부 관계자는 “체불 임금 청산, 해고자 복직, 단체협약 이행 등 권리 분쟁은 노동쟁의가 아니라 사법 절차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계는 해석 지침이 노동부 취지대로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합병·매각 등은 필연적으로 구조조정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당장 석유화학 업계가 사업 재편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데 이번 해석 지침대로라면 노조의 파업 영향권에 들 수 있다. 경영계 관계자는 “사업 구조조정이나 합병 등이 사실상 노조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노조와 의견 조율이 되지 않으면 파업 리스크에 노출될 것”이라고 했다.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이번 해석 지침으로 노란봉투법 우려가 낮아지지 않은 만큼 현장에서 결국 법적 다툼이 크게 증가할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