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감기인 줄 알았어요. 산후조리원 동기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서 요즘 감기가 유행이라고 들었거든요. 단 하루 만에 그렇게까지 나빠질 줄은…."
생후 15개월 된 아들을 키우는 이서경(38·가명) 씨는 지난 겨울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재태기간(태아가 자궁 내에서 성장하는 기간) 35주만에 태어난 아들의 백일을 일주일 가량 앞둔 때의 일이다. 출산 예정일보다 한 달 먼저 태어난 탓일까. 아들은 실내 공기가 조금만 건조해도 젖을 먹을 때 반복적으로 입을 떼거나 숨 쉴 때 '그렁그렁' 소리가 났고 잔병치레도 잦은 편이었다. 그날도 아침부터 콧물을 흘리고 가볍게 기침을 했는데, 단순 감기 증상으로 여겨 동네 소아과를 찾았다. 병원에서는 감기약을 지어주며 증상이 가라앉지 않으면 내일이라도 다시 내원하라고 안내받았다. 밤사이 상황이 급변했다. 아이가 숨을 쉴 때마다 가슴에서 '쌕쌕'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젖병을 물리려 하자 온 몸에 힘을 주고 뻗대면서 자지러졌다. 밤사이 씨름을 하던 이씨는 새벽녘에 아이가 숨을 헐떡이면서 몸이 축 늘어진 모습을 보고 놀라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검사 결과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Respiratory Syncytial Virus) 감염으로 진단됐다. 아이는 산소치료를 위해 입원하느라 병원에서 백일을 맞았다. 이씨는 "응급실에서 산소포화도가 90%도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머릿속이 하얘졌다"며 "지금도 처음부터 큰 병원에 갔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고 했다. 증상이 완화돼 퇴원한 이후에도 아이가 숨을 쉴 때마다 쌕쌕거리는 소리가 나고 감기에 걸리면 호흡곤란을 일으켜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 초기 증상 감기와 유사한데…영유아에선 독감보다 16배 위험
RSV는 국내에서 10월부터 3월까지 유행하는 계절성 감염병이다. 건강한 성인은 RSV에 감염되도 경미한 감기 수준의 증상에 그치지만 영·유아에게는 모세기관지염, 폐렴과 같은 심각한 하기도감염을 유발할 수 있다. 2018년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RSV는 전 세계적으로 5세 미만의 소아에서 매년 300만 건 이상의 입원과 약 6만 건의 사망을 일으켰다. 동일 연령대에서 독감으로 인한 입원 및 응급실 방문율과 비교하면 약 16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국내에서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2세 이전에 적어도 한 번은 RSV에 감염되는 것으로 보고된다. 그 중 2~5%가량은 입원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악화된다.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호흡기 감염병의 유행 패턴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코로나19가 유행할 시기에는 RSV 감염율이 오히려 줄었다. 통상 한 종류의 바이러스가 유행하면 다른 바이러스는 성행하지 못한다. 또 당시에는 사회 전반에 감염 관리가 강화되면서 유행성 질환의 발병률 자체가 크게 감소했다. RSV에 대한 집단면역 수준도 낮아졌다. 은호선 세브란스병원 신생아과 교수는 "매년 겨울철 RSV 유행 시기에는 중환자실이 포화 상태에 이를 정도로 고위험군 영아들의 입원이 급증한다"며 "지금은 팬데믹의 반대급부로 감염 관리 체계까지 무너지면서 올해나 내년 유행 시즌에 중증 RSV 환아가 급증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 선천성 심장병 있거나 이른둥이에겐 더 치명적…평생 후유증 남기도
특히 조산으로 면역 체계와 폐 기능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이른둥이나 선천성 심장질환, 기관지폐이형성증 등 기저질환이 있다면 RSV 감염 시 일반 소아보다 하기도감염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기본적으로 성인에 비해 기도가 매우 좁아 작은 부종에도 폐쇄가 쉽게 일어나는 데다, 면역체계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 바이러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탓이다. 예비 호흡능력이 떨어져 호흡기 감염 시 저산소증 진행도 빠르다.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6개월 미만의 영아가 RSV에 감염될 경우 입원율이 일반 소아 대비 약 2~3배, 기관지폐이형성증 환아는 약 13배까지 올라간다고 알려졌다.
은 교수는 "영유아기 중증 RSV 감염은 천식 발생 위험을 높이고 반복적인 호흡기 문제를 일으켜 평생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마땅한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예방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 고위험 영유아엔 ‘시나지스’ 우선 권고…“이른둥이 건보 적용도 확대”
현재 RSV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항체주사 접종이다. 얼핏 백신과 유사해 보이지만, 엄밀히는 약화한 바이러스 성분을 주사해 몸이 스스로 면역체계를 작동시켜 항체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백신과는 기전이 다르다. 국내에서는 2004년 미숙아 등 고위험 영유아 대상으로 허가된 '시나지스'와 지난해 허가된 '베이포투스' 등 두 가지 제품의 접종이 가능하다. 시나지스는 최초의 RSV 예방 약제로 25년간 고위험 영유아에게 사용되며 수백만 명에 대한 안전성과 효과 데이터를 확보했다. 대한신생아학회가 올 9월에 발표한 가이드라인에서 RSV 유행 계절 시작 시점에 △생후 6개월 이하인 이른둥이 소아 △혈류역학적으로 유의한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만 2세 미만 소아 △6개월 이내 기관지폐이형성증으로 치료받은 만 2세 미만 소아에게 시나지스를 우선 권고한 이유다. 베이포투스는 지난해 국내에서 허가돼 상대적으로 실사용 기간이 짧다. 대신 한 번의 근육주사만으로 약 5개월간 예방 효과가 지속된다는 장점을 갖췄다.
은 교수는 "고위험군 영유아에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RSV 예방약물은 시나지스가 유일하다. 작년 9월 급여 기준 확대로 이른둥이의 경제적 부담이 더욱 낮아졌다"며 "3대 고위험군인 이른둥이, 만성 폐질환 환아, 선천성 심장병 환아는 반드시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