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업계가 뿔났다. 지난 23일 한국주유소협회가 개최한 기자간담회는 주유소 관계자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성토대회를 방불하게 했다.
이들은 영업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대안주유소 설립, 대형마트 주유소 확대 등의 정부압박 정책으로 고사직전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압박정책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동맹휴업 등 단체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유업계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3개월간 리터당 100원 할인 조치를 단행했지만 돌아온 것은 반 토막 난 실적과 할인을 제대로 안 했다는 비난뿐이다.
하지만 업계 사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는 갖은 방안을 동원해 기름값을 내리겠다며 혈안이 돼 있다. 가격이 높은 주유소의 장부를 보겠다고 으름장을 놓더니 시중 주유소보다 싼 대안주유소 설치, 대형마트 주유소 확대 방침까지 내놓았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12일 자가폴주유소 및 셀프주유소를 확대하겠다면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정부 역할"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대안주유소를 세우겠다는 것 자체가 현재 기름값이 시장 원리대로 형성되고 있음을 인정하는 꼴이다. 가격 인하를 유도할 근거를 내부에서 찾지 못하다 보니 해외에서 싼 기름을 사와 대안주유소를 통해 판매하겠다는 발상이 나온 것이다.
업계에서는 대안주유소 1,300개 설치를 위해서는 토지비용을 제외해도 주유소당 10억원씩 총 1조3,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물론 세금에서 충당된다.
게다가 정부가 수입하겠다는 일본산 제품의 경우 오히려 한국 제품보다 비싸다. 오피넷에 따르면 8월 둘째 주 일본의 보통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227.1원(세금 833.1원 제외)으로 한국의 1,029.2원(세금 923.4원 제외) 보다 197.9원이나 높다. 이런데도 정부는 보조금 지급 등의 혜택을 줘 소비자들에게 싸게 제공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보조금 역시 세금에서 나올 것이 뻔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유류세를 내리는 게 백 번 낫다. 해외에서 기름을 사오고 이를 판매할 주유소까지 지으면서 막대한 세금을 축낼 바에야, 유류세를 인하해 세수를 줄이는 것이 방법론적으로도 간단하고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실효성도 없는 안을 가지고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이제라도 중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