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는 4일 EU집행위원회가 우리 정부에 한·EU FTA 제13장 ‘무역과 지속가능발전’에 따라 전문가 패널 소집을 공식 요청했다고 밝혔다. EU는 ILO 핵심협약 87·98호(결사의 자유 관련), 29·105호(강제노동 관련)의 비준 등 FTA의 노동 관련 조항에 대한 우리나라의 이행 수준이 충분하지 않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일각에서는 FTA가 발효된 지 만 8년이 되도록 협약을 비준하지 못한 것은 협정 위반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EU는 지난해 12월 한국이 FTA의 노동 조항을 위반했다며 공식적 분쟁해결절차를 시작했다. 올 3월까지 정부 간 협의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해 마지막 단계인 전문가 패널의 소집을 결정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 때문에 지난 5월22일 협약 비준을 위한 입장을 발표하고 관련 절차를 진행 중이지만 EU 측은 국회에서 협약의 비준동의안이 통과될지 정치적으로 불확실함을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EU가 이번에 문제 삼은 것은 핵심협약의 비준뿐만이 아니다. EU는 한국의 현행법 중 여섯 부분이 FTA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요 사항은 △노조법 2조의 ‘근로자’ 개념이 특수고용직·실업자·해고자에게 결사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점 △실업자·해고자 등이 가입한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점 △노조 설립신고제도의 자의성 △업무방해죄 및 평화적 파업에 대한 경찰과 검찰의 적용실태 등이다. 이들 조항이 ILO의 결사의 자유 원칙을 위배한다는 것.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는 “협약 비준 문제는 현 상황을 잘 설명한다면 긍정적일 수 있지만 EU가 실정법 조항을 조목조목 따지고 있어서 전망이 밝지는 않다”며 “EU가 노동권과 관련한 무역정책을 강하게 밀고 있어 끝까지 가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EU가 일본,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남미 4개국과 FTA를 맺으면서도 같은 조항을 넣었기 때문에 이번 결과가 EU 입장에서는 일종의 시범케이스다. 유럽의회도 노동권에 강경한 입장을 가진 쪽이 주도권을 쥐고 있어 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양측은 앞으로 2개월 내 EU 측, 한국 측, 제3국 측 1명씩으로 전문가 패널을 짜야 한다. 이들 패널은 90일간 의견을 청취한 뒤 보고서를 작성해 양측 정부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보고서에서 제시하는 권고·조언 등은 구속력을 가진다. 우리 정부는 “전문가 패널에게 정부의 입장을 상세히 설명하는 동시에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 법 개정 절차를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세종=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