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환율 급등 및 미국의 관세 정책에 국내 주요 식품업체들의 수익성에 ‘비상등’이 켜졌다. 올해 초 잇따라 제품 가격을 인상했지만, 원가 상승 폭이 이를 웃돌면서 실적 전망이 줄줄이 하향 조정되고 있다. 당장은 사업계획 조정과 재고 활용 등으로 버티고 있지만 고환율이 장기화되고 관세 악재까지 더해질 경우 수익성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롯데웰푸드(280360)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1850억 원으로 집계됐다. 6개월 전인 지난해 10월 말 2025년 영업이익을 추정했던 수치(2600억 원)와 비교해 28.8% 급락했다. 같은 기간 농심(004370)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 역시 2300억 원에서 1950억 원으로 15.3% 낮아졌다. 오뚜기(007310)는 2750억 원에서 2400억 원으로 12.7% 줄었다. CJ제일제당(097950)도 같은 기간 1조 7800억 원에서 1조 6400억 원으로 7.9% 하향 조정됐다. 곧 발표될 식품사들의 1분기 영업이익도 작년 말에 예상했던 것에 못 미칠 전망이다.
올해 초 식품사들이 일제히 제품 가격을 인상하며 수익성 개선에 나섰음에도 실적 전망이 하향된 것은 최근 환율이 급등하면서 원재료 부담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초만 해도 1300원 초반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한 때 1400원 대 후반까지 치솟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식품산업은 생산 원가에서 원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60~70%에 달한다. 원맥(밀가루 원료), 원당(설탕 원료)은 물론 팜유, 식용유, 코코아 등 식품 생산에 사용되는 주요 원재료는 상당수 해외에서 조달된다. 이들 품목은 국제 시장에서 주로 달러화로 거래되기 때문에 환율 급등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미국의 관세 정책도 식품기업들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각국에 대한 상호관세 적용을 90일 유예하긴 했지만 발효될 경우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식품사들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수입업체들이 관세 부담을 선제적으로 덜기 위해 국내 식품기업에 수출 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이는 기업의 마진 축소로 이어져 실적에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식품업체들은 통상 3개월치 원재료 재고를 보유하고 있어 일시적인 환율 상승에는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조달 부서에서는 약 3개월 간 주요 원재료의 가격 변동 추이를 지켜보며 적절한 시점에 매수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원가 부담을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고환율이 현재처럼 장기화될 경우 이러한 전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특히 롯데웰푸드, 농심, 오뚜기 등 내수 비중이 큰 기업들은 더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는 데다 내수 침체라는 이중고에 직면하면서다.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매출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환차익으로 손실을 상쇄시킬 뾰족한 방안도 없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식품사들의 매출 전망은 큰 변동이 없지만 원·달러 환율 1400원대가 ‘뉴노멀’로 자리 잡으며 원가 부담이 커진 만큼 수익성은 당초 예상보다 낮을 것"이라며 “규모가 큰 기업의 경우 환율이 10% 오르면 국내 사업 기준으로 연간 이익이 100억 원 이상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