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국내 미술 시장의 가늠자로 여겨지는 화랑미술제가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16일 VIP 프리뷰로 막을 올린 화랑미술제는 시작부터 긴 줄이 서고 5시간 동안 6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리는 등 기대 이상의 열기를 보였다. 올해 처음으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A&B홀에서 개최하면서 관람이 편안해진 동시에 볼거리가 늘었고 참여 갤러리들의 출품작 수준도 올라가는 등 전반적인 행사 품질도 향상됐다는 평가다. 첫날부터 완판 기록을 세운 갤러리가 나오는 등 판매 분위기도 고조됐지만 아직 신진 작가나 소품의 비중이 높아 마지막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17일 한국화랑협회와 갤러리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3시 개막한 지 하루 만에 작품을 모두 판매한 갤러리들이 나왔다. ‘도도새’ 김선우 작가의 작품을 단독으로 선보인 가나아트는 개막 직후 ‘솔드 아웃’을 알렸고 연필과 금박으로 고양이를 그리는 OKNP의 박성옥 작가 작품도 이날 모두 완판된 것으로 전해졌다.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도 판매가 이어졌다. 갤러리현대의 이강소, 이정갤러리의 우고 론디고네, 313아트프로젝트의 우국원 작가의 작품들이 잇따라 팔려 나갔고 국제갤러리는 3억 원을 호가하는 하종현 작가의 ‘접합’을 판매해 주목받았다. 국제갤러리는 이날 하루에만 김윤신과 줄리안 오피 등의 작품 8점을 판매했다.
특히 중진 작가와 신진 작가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코엑스 B홀 끝자락에 위치한 금산갤러리는 ‘자개 작가’ 김은진의 작품을 개막 1시간 30분 여 만에 2점 팔았고 학고재는 박광수 작가의 작품 4점과 유리 작가의 작품 6점을 오픈 1시간 여 만에 판매하는 여유를 보였다.
실제 이날 화랑미술제는 예상보다 많은 관람객이 몰리며 불황을 잊게 하는 들뜬 분위기가 형성됐다. 대부분 갤러리가 “지난해보다 분위기가 훨씬 좋다”고 입을 모았고 관람객 수도 확실히 많아진 것을 체감한다고 전했다. 화랑협회 집계에 따르면 16일 첫날 화랑미술제를 찾은 관람객은 6100명으로 전년 대비 30% 늘었다. 43년 화랑미술제 역사상 처음으로 코엑스 1층 A홀과 B홀을 동시에 사용하면서 관람객들의 편의성을 높이고 볼거리와 쉼터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것도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A홀과 B홀을 잇는 지점에는 신진 작가들의 특별전 ‘줌인’ 부스가 설치돼 시선을 끌었다. PRETTYLINEZ 정현, 레지나킴, 민정See, 박보선, 박지수, 방진태, 신예린, 이지웅, 최지원, 추상민 등 10명의 작가가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방진태·신예린의 작품은 개막 수 시간 만에 이미 팔렸음을 알리는 빨간 스티커가 곳곳에 붙었다. 올해 처음 선보인 솔로 부스도 단일 작가를 집중 조명하자는 취지에 걸맞게 전시장 못지 않은 공간을 선보여 관람객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이두원 작가를 집중 조명한 맥화랑은 작가가 지난해 부산비엔날레에 출품했던 대형 카라반 작품을 전시해 관람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다만 첫날의 기대감이 마지막 날까지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또 판매 작품 대다수가 신진 작가나 소품 위주로 구성돼 “저렴한 작품”에 그치고 있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작품 값이 역대급 저렴한 수준으로 나오고 있는 게 지갑을 열게 한 것 같다”며 “미술 시장이 회복됐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다른 갤러리 관계자도 “큰 작품에 대한 문의는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며 “아직 불황의 그림자가 느껴진다”고 했다. 화랑미술제는 20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