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로 하락하자 환차손을 우려한 서학개미(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가 일주일 새 1조 원 이상을 팔아치운 것으로 나타났다. 때마침 무디스가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투자자의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미 반영된 악재여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18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12일부터 16일까지 국내 투자자는 미국 주식 9억 2355만 달러(약 1조 2934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달 들어 9일까지 652만 7230달러(약 91억 4139만 원)를 사들인 것과 달리 매도 우위로 전환한 셈이다.
국내 투자자가 최근 일주일간 가장 많이 판 미국 주식은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를 3배로 추종하는 '디렉시온 데일리 반도체 불 3X SHS 상장지수펀드(ETF)'로 3억 9773만 달러(5570억 1814만 원)를 순매도했다. 이어 엔비디아(1억 8430만 달러·2582억 원), 팔란티어(1억 2838만 달러·1798억원) 등 순으로 높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 여파로 급락세 보이던 미국 증시는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완화될 조짐이 나타나면서 낙폭을 회복하는 모습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지난달 저점 대비 20%가량 반등해 연간 수익률이 플러스(+)로 돌아섰다.
올해 들어 이어진 미국 증시의 급락장에서도 매수세를 유지하던 국내 투자자들은 오히려 지수가 반등하자 매도 우위를 나타내고 있다. 미중 관세 협상으로 대만달러, 위안화 등 아시아 통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원화 가치가 급등하자 환차손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서둘러 미국 주식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주식이 상승해도 원·달러 환율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 환차손으로 인해 결국 투자 수익률이 악화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원·달러 환율은 미국 상호관세가 발효된 지난달 9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6년여 만에 최고 수준인 1484.10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이달 16일 주간 거래 종가 기준 1389.55원으로 고점 대비 6.4% 내렸다. 시장에서 미국이 무역수지 적자 개선을 위해 아시아 통화의 절상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만큼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 중반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과 무역 협상을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과정 속에서 미국이 통화 절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시아 통화의 강세 방향성은 유효할 것”이라며 “특히 달러가 안전 통화로서 신뢰도 약화, 관세발(發) 미국 경제 부진 가능성 등을 반영해 연초 이후 약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짚었다.
여기에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이달 16일(현지 시각)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강등하면서 경제 둔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무디스는 “최근 10년간 미국 연방 정부 부채는 지속적인 재정 적자로 인해 급격히 증가했다”며 “이 기간 연방 재정 지출은 증가한 반면 감세 정책으로 재정 수입은 감소했다”고 신용등급 하향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금리가 상승함에 따라 정부 부채에 대한 이자 지급도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무디스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가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신용등급 하향이 지난해 11월에 등급 전망을 낮춘 뒤 6개월 만에 진행한 예고성 강등인 만큼 2011년 S&P와 2023년 피치가 신용등급을 낮췄을 때처럼 급락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번 무디스 신용등급 강등은 단기 변동성 재료일 뿐 증시 방향성을 바꿀 악재까지는 아닐 것”이라며 “앞선 두차례 강등과 현재 증시를 둘러싼 맥락이 달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