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 용도로 설치된 국내 첫 에너지저장장치(ESS)가 10년 만에 철거된다. 화재와 잦은 고장, 수리 불능 등으로 운전 초기 90%를 넘겼던 가동률이 20~30%대로 주저앉으면서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으로 인해 ESS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설치 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막대한 설치 및 사후 보수비만 잡아먹는 천덕꾸러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20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최근 경기도 신용인 ESS와 서안성 ESS를 내년에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총 52㎿(메가와트) 규모의 이 ESS는 각각 경기도 신용인변전소, 서안성변전소에 설치한 주파수 조정용 ESS로 2015년 7월에 국내 최초로 상업운전을 개시한 바 있다. 주파수 조정용 ESS는 전력망 주파수가 흔들릴 때 전기를 빠르게 충·방전해 전력망을 안정시키는 장치다. 전기발전량이 너무 넘치거나 모자라면 주파수가 변해 정전·전자기기 오작동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는 것이다.
문제는 ESS 설치 이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2018년 한 해 동안에만 경북 경산변전소, 경기 신용인변전소 등에서 ESS 화재가 10건 넘게 일어나는 등 안전성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신용인·서안성 등 일부 ESS는 2018년부터 가동을 사실상 중단했으며 3년 뒤인 2021년께 화재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서야 재가동될 수 있었다.
하지만 가동을 재개한 뒤에도 문제는 끊이지 않았다. ESS 설비가 고장 나서 작동이 안 되거나 부품 재고가 없어 수리가 불가능한 사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전의 한 관계자는 “신용인과 서안성 ESS 설비의 경우 초기에는 가동률이 90% 이상이었지만 현재는 20~3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첫 상업운전 당시 한전은 총 52㎿ 규모의 서안성·신용인 ESS로 연간 약 100억 원의 전력 구입비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밝혔지만 가동률이 급감하면서 이 같은 경제적 효과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전력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SDI나 LG화학 등 대기업이 제작한 배터리 및 전력변환장치(PCS)가 ESS 구축에 쓰이지만 고장이 났을 때 부품이 단종돼 수급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며 “신용인·서안성 ESS의 경우 7월이면 10년간의 성능 보증 기간도 종료돼 정상운전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전력수요 급증에 대비해 ESS를 늘린다고 해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했다. 올 대선을 앞두고 주요 후보들이 앞다퉈 발전용량 및 전력망 확충과 이에 따른 ESS 확대를 외치고 있지만 ESS 관리 선진화 방안이나 유지 비용 조달 방안을 함께 내놓는 후보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을 지낸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ESS는 통상 15년 정도 쓸 수 있다고 보지만 휴대폰 배터리도 관리가 잘 되지 않으면 2년도 안 돼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처럼 ESS도 마찬가지”라며 “연간 ESS 유지 비용은 설치비의 5~10%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1GWh(기가와트시) 규모의 ESS를 설치하는 데 약 4000억 원이 필요하다고 가정하면 유지비는 매년 200억~400억 원 수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원자력 업계는 2050년에 태양광발전 비중이 50%까지 늘어날 경우 총 1160GWh 규모의 ESS가 필요하다고 봤는데 이 경우 유지비만 매년 수십조 원이 소요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