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러로 구성된 ‘유라시아 핵 축’의 위협이 커지면서 전술핵 재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되고 있어 이에 대응하기 위한 자체 방어능력 강화 차원에서 한반도에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조야에서도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긍정적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당장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의 공화당 간사인 로저 위커 의원이 지난 5월 29일(현지 시간) 공개한 국방투자계획 보고서 ‘힘을 통한 평화’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과 인도 태평양 지역의 미국 동맹을 타격할 수 있는 더 많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매년 만들고 있다”며 “당장의 외교적 해법은 보이지 않을지라도, 미국은 한반도의 억제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며 대북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반도에 미국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그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핵위협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처럼 한국 등과도 핵무기를 공유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그 명맥이 남아 있는 것은 전투기 탑재용 핵폭탄인 B61 하나뿐인 유일한 옵션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핵공유 역시 B61 핵폭탄이 단일 옵션이기에 주한미군에 B61만 유치한다면 북핵에 대한 억제력 발휘가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 같은 기류 때문에 정치적으로 전술핵 재배치를 이야기 하지만, 군사적·기술적으로는 그것이 불가능에 가깝고 실효성도 없다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지난 5월 9일 발표한 ‘60년대의 귀환: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핵 존재감 회복하기’(A Sixties Comeback: Restoring U.S. Nuclear Presence in Northeast Asia)라는 이슈브리프 보고서에 따르면 1950년대 후반부터 미국은 북한과 중국의 재래식 군사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 타이완, 필리핀, 괌 등에 핵무기를 전진 배치했다. 1958년 초에는 한국에 원자포, 어니스트 존 미사일, 폭탄, 원자 폭발물 등을 배치했다. 1967년에는 서태평양 지역에 3200개의 핵무기가 배치됐고, 여기에는 일본에 1200개와 한국에 950개 가량이 포함됐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주둔한 주한미군은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지 내 전술핵 배치를 늘려 최대 950기까지 달했다. 1991년 11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비핵화선언 이후 전술핵은 전량 철수했다. 전술핵은 20kt(킬로톤·TNT 폭탄 2만t을 한번에 폭발시켰을 때 위력) 이하의 위력을 가진 소규모 핵무기로, 대략 1기가 1945년 일본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투하된 원자폭탄 정도의 파괴력을 갖고 있다.
남한이 이 같은 비핵화 움직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핵 개발을 꾸준히 해왔던 북한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1차 북핵 위기를 일으켰다. 2002년에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발견되면서 2차 북핵 위기도 발생했다. 결국 북한은 2006년에 1차 핵실험에 성공한 이후 지금까지 6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했다.
스웨덴 싱크탱크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공개한 ‘2024년도 연감’(SIPRI Yearbook)에 따르면 북한은 2024년 1월 기준으로 핵탄두를 50기 보유했고 총 90기의 핵탄두에 도달할 수 있는 충분한 핵분열 물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에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 하는 게 시급하다는 주장이 다시 부각되는 이유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의 핵무기도 한국과 일본에 위협을 더하고 있다. 2024년 북한과 포괄적 전략적 파트너십 조약을 체결한 러시아는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4380개의 핵탄두를 보유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역시 야심찬 핵무기 현대화 프로그램을 시작해 5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고 2030년까지 1000개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미국의 핵무기 보유량이다. 미국은 러시아에 이어 3708개의 핵탄두를 보유 중으로 이 가운데 전술핵은 200여개에 불과하다. 또 100여개는 유럽에 있고 나머지는 미국 전략비축기지에 있다. 이를 한국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특히 노후화 때문에 폐기 예정이라서 미 전술핵의 현대화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는 상황이고, 이 같은 한반도 재배치를 위해서는 한국 전용으로 한다는 협정도 맺어야 한다. 아울러 1976년까지 경기 오산에, 1991년까지 전북 군산에 각각 보관돼 왔다 미국으로 이전돼 한국 내 보관 장소 역시 30년 넘도록 사용하지 않아 시설 현대화는 전술핵을 재배치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기존 지역이 아닌 한국 내 재배치 되는 전술핵을 보관할 적절한 장소 검토도 병행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를 위한 수천억 원에 달하는 비용 부담이 현실적으로 가장 큰 걸림돌이다. 미국 행정부가 한반도에 ‘전술핵 유연 재배치’를 허용해도 그 초기비용이 최대 9317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는 2025년도 방위비 분담금의 약 61%에 해당하는 규모다. 조비연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4월 18일 발간한 ‘미국의 전술핵 유연 재배치 비용 및 편익 평가’ 보고서에서 초기비용만 약 5억6694만~6억7760만 달러(약 7795억~9317억 원)에 달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중국 등 주변국이 민감하게 반응해 이슈화 되는 것는 정치적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조 연구위원은 “전술핵 유연 재배치로 확전 가능성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 때와 같은 중국의 강경 대응 등 정치적 리스크까지 감안해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에 많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