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대 뉴욕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한 HBO 드라마 ‘도금 시대’(The Gilded Age)가 권력 이동을 핵심 주제로 한 시즌 3를 선보였다. 첫 번째 에피소드 제목인 “누가 여기서 권력을 쥐고 있는가?”가 이번 시즌 전체를 관통하는 메타포다. 영국 국민 드라마 ‘다운튼 애비’ 시리즈 작가 줄리안 펠로우즈가 창작자이자 총괄 프로듀서로, 시즌 3는 페기 스콧의 스토리라인 확장과 흑인 엘리트 사회의 부상,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사회적 권력 투쟁을 통해 여성 권력, 야망, 사회 변화의 테마를 깊이 탐구하고 있다.
시즌 1부터 전통적 가치와 보수적 규범을 지키며 주변 인물들과 긴장 관계를 형성해온 애그니스 밴 레인(크리스틴 바란스키)이 재정난으로 권위를 잃고 동생 에이다 브룩 포르테(신시아 닉슨)가 실권을 잡는다. 시즌 2의 오페라 전쟁에서 승리한 신흥 부호 러셀 가문이 사교계의 정점에 오르는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조지(모건 스펙터)와 버사 러셀(캐리 쿤) 부부는 딸의 혼사 문제로 인해 결혼 생활의 위기를 맞는다.
지난 달 뉴욕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줄리안 펠로우즈는 “돈과 지위를 잃어도 모든 것이 예전과 같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당연히 그럴 수는 없다”고 언급했다. 19세기 후반의 이야기가 현재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 줄리안 펠로우스는 “일론 머스크 같은 인물들이 경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길디드 에이지’(도금 시대)와의 유사점을 발견했다”며 “인간이 서로를 해치고 계략을 꾸미며 자신의 명성을 걱정하는 방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고 말했다.
애그니스와 에이다 자매의 권력 관계 변화 속에서 동생 에이다 역을 맡은 신시아 닉슨은 “수년간 한 정당이 집권하다가 갑자기 야당이 권력을 잡게 된 것 같다”며 캐릭터의 변화를 정치적 비유로 표현했다.
시즌 3에서 보여주는 러셀 부부의 결혼 위기는 20년 만에 맞닥뜨린 근본적 균열이다. 지난 두 시즌 동안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며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이상적인 부부상을 보여준 조지와 버사 러셀 부부가 결혼 생활을 뒤흔드는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딸 글래디스의 결혼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들의 대립은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선 근본적인 가치관과 정체성의 충돌로 발전한다.
캐리 쿤은 버사의 심리를 분석하며 “조지는 여성이 처한 진짜 위험을 이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녀는 “여성의 영역은 완전히 다르다. 조지는 생존을 위한 여성의 본능을 이해하지 못한다. 결혼을 통해 생존해야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버사에게 딸의 결혼은 단순한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실존적 문제다. 그녀는 딸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동시에 자신이 경험했던 좌절을 딸이 겪지 않기를 원한다. “버사는 자신의 능력이 억눌렸던 경험을 알고 있기 때문에, 딸이 자신이 갖지 못했던 종류의 권력을 갖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쿤은 덧붙였다.
버사가 딸을 뉴욕 사교계를 넘어선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녀에게는 딸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며, 동시에 모성 본능의 발현이기도 하다. 시즌 말에 이르러 버사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다고 느끼며 “모든 것이 잘 풀렸는데 조지가 왜 그렇게 큰 문제로 여기는지 이해할 수 없어한다”고 쿤은 설명했다. 특히 여성의 권력과 야망에 대한 이중 잣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문제다. 캐리 쿤은 “여성의 야망에 대한 존중은 우리가 여전히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며 “특히 유색인종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렇다”고 지적했다.
시즌 3에는 조던 도니카가 윌리엄 커클랜드 박사 역으로 새롭게 합류했다. 그는 “이 작품에 참여하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에 대해 새롭게 배우게 됐다”며 “노예제도 이전부터 이미 자유로운 아프리카인들이 미국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데니 벤튼이 연기하는 페기 스콧의 스토리라인도 더욱 확장된다. 그녀는 “줄리안이 우리 쇼에 흑인 엘리트 세계의 씨앗을 심고,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정원으로 꽃피우는 것을 보는 것이 놀랍다”며 향후 독립적인 스핀오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은선 골든글로브 재단(GGF)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