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대의 모터사이클이 1625㎞에 이르는 백두대간을 따라 달린다. 지리산부터 백두산까지 이어진 길이지만 남북 분단으로 인해 현재로서는 690㎞ 지점에서 끊긴 길이다. ‘끝이지만 끝이 아닌’ 그 길 위에서 주인공들은 탈북민,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경험한 외국인들을 만나며 통일의 희망을 찾는다. 올해 5월 말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타이거 로드’의 줄거리다. 타이거 로드는 ‘호랑이가 자유롭게 다니던 길’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백두대간의 영어 이름이다.
영화는 통일에 대한 인식 자체가 희미해진 상황이 안타까웠던 통일부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통일부 대변인실 홍보담당관실의 정재헌 주무관은 ‘영화’를 떠올렸다. 서울예대를 졸업하고 동국대 영상대학원에서 영화기획으로 석박사 학위까지 딴 정 주무관으로서는 자연스러운 결론이었다. 단편적인 숏폼보다는 호흡이 긴 롱폼 콘텐츠로 통일 문제를 담아낼 방법을 고민하던 차이기도 했다.
통일부 내부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반기는 목소리가 높았다. 덕분에 지난해 5000만 원의 작지만 귀중한 예산으로 제작에 착수할 수 있었다. 영화를 기획하고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정 주무관은 “서울에 탈북민들이 많지만 지방에도 적지 않고, 처음에는 이해도가 낮은 사람들이 실제로 탈북민들을 만나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과거 정부 부처가 웹드라마를 제작하거나 단편영화 공모전을 연 사례는 있었지만 영화 제작은 통일부가 최초다.
그렇게 통일부의 ‘영화 제작 용역’이 나왔고, 야심 찬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된 김아론 감독은 평소 취미인 모터사이클에 통일을 더하는 낯선 조합을 떠올렸다. 백두대간을 활보했던 호랑이와 모터사이클 모두 ‘자유’라는 단어를 연상시키는 만큼 직관적인 조합이기도 했다. 곧바로 모터사이클 친구이기도 한 한지서 배우와 김준광 배우에게 백두대간 종주를 제안했고 모두 의기투합했다.
이들이 백두대간을 따라 달리며 들은 이야기들은 분단 현실의 다양한 단면을 담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분단과 통일을 경험한 독일인 윤안나(안나 엘리자베스 릴만) 씨는 “남북이 다른 나라가 된 지 70년인 만큼 이미 차이가 크고, 지금이라도 교류를 시작해야 그 차이가 더 커지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작 한국인들이 외면해온 장기 분단의 불행한 종착역을 경고한 셈이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친오빠를 잃은 우크라이나인 마리아 콜스닉은 개인의 삶이 전쟁으로 얼마나 흔들릴 수 있는지 증언한다.
다양한 지역에서 만난 탈북민들은 북한에서의 삶을 들려준다. 낯선 사회에서의 경험, 그리고 한국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얼굴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김 감독은 “많은 사람들이 통일을 역사나 이념 문제로 말하지만 결코 먼 이야기나 정치 문제가 아니다”라며 “나와 가족, 그리고 우리 모두의 현재 진행형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타이거 로드’는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LG U+ tv, 지니TV, SK Btv 등 국내 OTT에서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 해외 OTT가 빠진 것은 정부 예산으로 만든 국유재산인 만큼 판권 거래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 기관의 콘텐츠 제작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문화체육관광부·한국콘텐츠진흥원 등의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대신 통일부는 앞으로 다양한 해외 영화제에 ‘타이거 로드’를 출품해 남북 분단, 통일 문제에 관심이 높은 국가들을 중심으로 관객을 모을 계획이다. 정 주무관은 “정책에 그치지 않고 더 깊게 고민해보도록 만드는 영화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