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3대 메가뱅크인 미쓰비시UFJ신탁은행(MUFJ), 미즈호은행, 미쓰이스미토모은행(SMBC)이 주축이 된 합작 법인 프로그마가 기업용 스테이블코인 발행·송금 플랫폼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기관 간 송금 분야에서 스테이블코인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거래 속도가 빠르면서 가상자산의 단점인 가격 변동성은 낮아 안정적인 결제·송금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스테이블코인을 소매 거래나 외환 송금 정도로 생각하는 한국과 달리 한 단계 더 나가고 있는 셈이다.
프로그마가 구상하는 스테이블코인 송금 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송금인이 거래 은행에 송금을 요청하면 해당 은행은 거래소를 통해 엔화를 엔화나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환전한다. 이후 프로그마는 환전한 스테이블코인을 송금하고 이를 수취 은행이 거래소를 통해 받은 스테이블코인을 법정화폐로 환전해 수신인에게 돈을 지급한다. 동시에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인프라를 통해 메시지를 전송하고 자금세탁방지(AML) 과정을 거친다. 그만큼 불법 자금에서 안전하다.
하지만 굳이 스테이블코인 지급결제를 이용할 필요가 있을까. 다케자와 유스케 프로그마 최고전략책임자(CSO)는 4일 “스테이블코인의 강점은 은행 입장에서 시스템 투자 비용이 낮다는 점”이라며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나 예금 토큰에 비해 훨씬 저렴하게 이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다. 국가가 보증하는 것으로 법정통화와 같다. 형태만 디지털로 유통된다. 예금토큰은 시중은행이 발행하는 것으로 은행 예금과 1대1로 연동된다. 예금을 디지털화한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은행을 포함한 민간 업체들이 찍는데 발행 규모만큼 법정화폐나 국채·현금 등을 1대1로 보유하도록 해 가치가 고정되는 형태다.
시장에서는 낮은 투자 비용 때문에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 개발도상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 국가와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주요 선진국도 스테이블코인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나 미국, 유럽연합(EU) 내부에서는 CBDC만 있어도 충분할 수 있어도 국가 간 거래는 어렵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주요국에서는 앞으로 CBDC와 예금 토큰, 스테이블코인을 함께 써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다케자와 CSO는 “결제 시스템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스테이블코인이 모든 것을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CBDC와 토큰화 예금, 스테이블코인의 강점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서로 연계하면서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방향”이라고 조언했다.
중요한 것은 속도다. 현재 일본의 메가뱅크들은 프로그마의 플랫폼에서 연내 엔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발행할 준비에 돌입했다. SMBC는 블록체인 기업 아바랩스, 가상자산 보안 업체 파이어블록스와 손잡고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추진 중이며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의 MUFJ도 발행 준비에 나섰다. 국내 은행인 NH농협은행과 신한은행·케이뱅크도 현재 이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일본은 2022년 6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마련한 바 있다.
일본에서 도매용 스테이블코인 발행 움직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엔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JPYC가 이미 소매용 스테이블코인으로 유통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일본의 유일한 엔화 스테이블코인으로 퍼블릭 체인 위에 존재하는 스테이블코인이지만 일본 법상으로는 선불식 지급 수단으로 분류돼 사실상 전자 상품권에 가깝다. 유통 규모는 약 22억 개 수준으로 많지 않다. 다만 JPYC는 자금 결제법상 자금 이동업 라이선스 취득을 추진, 법적으로도 진정한 의미의 스테이블코인으로 전환할 계획을 하고 있다.
일본의 대형 금융그룹 SBI 역시 스테이블코인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SBI는 올 3월 일본 최초로 서클의 달러 스테이블코인인 유에스디코인(USDC)을 자사 거래소인 SBI VC트레이드(SBI VC Trade)에 상장했다. 서클에 총 5000만 달러의 자금을 투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