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AI 시대, 생산성과 성장의 딜레마

◆김지희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기업들 신입 줄이고 AI 도입 '사활'

업무 빨라졌지만 배움의 기회 사라져

주니어 고갈 막을 사회적 논의 시급





최근 2년여간 일의 효율이 크게 증가했다. 챗GPT·제미나이·클로드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지칠 줄 모르는 동료 연구자처럼 도와준 덕분이다. “이 문단이 글의 흐름과 어울리지 않는데 어떻게 수정할까” “이 주장을 뒷받침할 선행 연구를 찾아줄래?” “데이터로 이런 분석을 하는 코드를 짜줄래?” 예전 같으면 하루 꼬박 걸릴 일이 한두 시간 만에 끝나고 일주일은 족히 걸렸을 일이 하루 만에 마무리된다.



과거 이 일들의 상당 부분은 연구조교 학생들과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며 진행했다. 데이터 분석의 큰 방향을 함께 잡고 나면 실제 코드를 돌리고 결과를 정리하는 것은 학생들이 담당했다. 또한 학생들과 함께 앉아 문답을 하고 같이 고민하며 그들의 논문을 한 줄 한 줄 고쳐나갔다. 물론 이 과정은 더뎠다. 함께 앉아 있어도 한 시간에 한 문단도 채 고치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이제는 학생의 글을 받아 내가 직접 생성형 AI의 도움으로 수정해 건네줄 때가 많아졌다. 그게 빠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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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은 극적으로 높아졌지만 역설적으로 학생들의 성장과 배움의 기회가 줄어들었다. 학생들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던 그 과정은 단순한 노동의 대가를 넘어 이론을 세우고, 데이터를 다루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우는 핵심적인 시간이었다. 비효율적으로 보였던 바로 그 시간에 진짜 배움이 일어났던 것이다. 필자 역시 박사 과정 시절 지도교수의 연구를 보조하며 그 모든 것을 어깨너머로 배웠다. 이론을 검증하고,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선행 연구를 읽고, 수십 번씩 글을 고쳐 쓴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 AI에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은 학계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산업 현장 전반에서도 주니어의 실종이라는 구조적 딜레마가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벤처캐피털 시그널파이어가 최근 발표한 ‘기술 인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대졸 신입 채용은 2023년 대비 25% 감소한 반면 2~5년 차 경력직 채용은 오히려 27% 증가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신입 교육 비용을 줄이고 대신 시니어에게 AI 툴을 제공해 생산성을 즉각 높이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됐다. 과거 주니어들은 반복 업무를 통해 조직이 일하는 방식을 배우며 성장했다. 그러나 이제 그 성장의 사다리 첫 칸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고착화된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시니어의 고갈이라는 더 큰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성장의 기회를 얻지 못한 주니어는 결코 시니어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저성장과 인구절벽이라는 이중고를 겪는 우리 경제에 또 다른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개인의 노력, 기업의 전략, 그리고 기술 발전의 방향이 함께 가는 다층적인 해법을 요구한다. 우선 개인은 정해진 업무를 배우는 수동적 학습자에서 벗어나 AI를 파트너 삼아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능동적 개척자가 돼야 한다. 기업 역시 주니어에게 AI의 결과물을 검증하고 AI를 창의적으로 활용하며 AI가 놓치는 예외 상황을 처리하는 새로운 직무를 설계해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개인과 기업의 노력은 기술 발전의 올바른 방향 설정과 정책적 지원을 통해 완성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AI는 단순히 업무를 대신 해주는 조력자를 넘어 사용자의 성장을 돕는 조언자이자 쌍방향 튜터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AI 기술 정책을 수립할 때 단기적인 생산성 향상 지표와 더불어 인재 성장 기여도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이러한 성장 촉진형 AI의 개발과 도입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AI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단순히 AI를 잘 쓰는 능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AI와 함께 성장하는 인재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눈앞의 효율성에만 매몰돼 성장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생산성 향상과 인재 양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한 AI 기술 철학과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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