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에어컨을 오랫동안 틀어 놓고 생활했을 것이다. 에어컨 사용 폭증과 같이 큰 전력수요를 일으키는 현상에 대응하는 것은 전력 업계의 오랜 숙제였다. 사실 2011년 발생한 9·15 정전 사태는 한여름이 지난 시기에 갑자기 닥친 무더위로 냉방 수요가 급증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일상생활이나 경제생활에 있어 전기는 필수적이어서 전력 공급 중단에 따른 피해 규모는 올 4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발생한 대정전 사태에서 엿볼 수 있듯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재난적인 대정전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 차원에서 철저히 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정전 대비와 함께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는 ‘국지성 수급 불균형’ 현상이 아닐까 한다. 인구와 첨단산업이 밀집한 서울과 수도권은 송전선이 제때 증설되지 못하면 중장기적으로 수급 불균형이 만성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우려스럽다. 더구나 인공지능(AI) 시대의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함께 반도체 클러스터가 수도권에 속속 들어설 예정인데 문제는 이들 시설이 엄청난 전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이미 수도권 전력수요가 과포화 상태여서 전력망 건설이 지지부진하다면 머지않아 역내에 위치한 공장 가동을 위해 사전 예약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는 ‘에너지 고속도로’ 구상을 내놓았다. 남부 지방에서 남아도는 재생에너지를 수도권에 공급할 바다 송전망을 건설해 전력난과 탄소 중립을 한번에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대서양 연안을 따라 85기가와트(GW)급의 대규모 풍력단지를 잇는 송전망을 건설하려는 미국 에너지부의 송전망 구상과 북해의 풍력발전을 포함해 북부 스코틀랜드와 남부를 연결하는 영국의 송전망 계획을 참고할 수 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업이지만 우리나라가 축적한 전력 설비·운영 기술 등을 고려하면 도전할 만하다고 본다.
에너지 고속도로 구상을 실현하려면 천문학적 규모의 전력망 투자가 이어지는 만큼 우리 전력산업의 기술 역량과 시장 진출 가능성, 즉 기술사업화를 최우선에 둘 것을 제안한다. 우리나라는 과거 배전 자동화나 765킬로볼트(㎸) 송전 기술 등 국책사업을 산학연이 개발하고 한국전력이 실제 적용을 담당하는 유기적 기술사업화에 성공한 경험이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전력 품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고 수준에 올랐고 변압기·차단기·케이블 등 전력기기 수출액은 올해 200억 달러에 이르러 10대 수출산업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 고속도로와 같은 대규모 인프라 사업은 그 자체로 백년대계에 해당하지만 도전할 만한 수준의 목표 설정과 함께 그 성취 과정에서 우리 기업들이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산업화 전략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전력설비 기업들의 제품화 기술뿐만 아니라 한전과 전력거래소, 연구기관 등이 담당하는 전력 분야 신기술이 적용될 국가전력망을 정전 없이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우리 고유의 기술 개발도 필수적이다. 에너지 고속도로가 수도권 전력난을 해소하는 기간 전력망을 넘어 대한민국 전력산업 경쟁력을 세계 으뜸으로 만들 기회이자 글로벌 시장 석권의 발판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