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살려야 할 책무가 있는 여당이 대다수 기업의 우려를 무시하고 ‘반기업적 폭주’를 계속하면서 입법권을 남용하려 한다. 자기주식(자사주) 의무 소각이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4개의 관련 법안을 보면 ‘모든 회사’ 또는 ‘상장회사’는 자사주 취득 후 1년 내 (또는 시행령으로 정하는 기간 내) 처분하도록 한다. 아울러 정기 또는 임시 주주총회 승인 시에만 총회 승인 한도 내에서 보유하되 총회 승인 시 ‘합산 3%룰’을 적용해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해서 3%까지만 허용한다는 것이다.
우선 세상에 유사 사례가 없는 1962년에 만들어진 ‘3%룰’에 외과의사식 성형을 가해 ‘합산 3%룰’이라는 괴물로 만든 다음 이것을 감사(위원) 선임에 이어 자사주 보유에까지 확대 적용한다는 발상이 기발하지만 참으로 어이없다. 회사의 재무에 관한 사항은 이사회의 권한인데 주주총회 승인을 받으라는 것도 뜬금없거니와 주주의 의결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인데 최대 투자자의 재산권을 함부로 제한하려 드는 국회는 헌법 정신까지 무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정부는 자사주의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고려해 자유로운 보유와 처분을 허용했다. 주요국에서 인정되는 포이즌 필이나 차등의결권과 같은 회사와 주주의 장기적 이익 보호 수단이 마련돼 있지 않은 한국에서는 자사주 처분만이 유일한 대체 수단이었다. 이제 기업에서 그 속옷마저 빼앗아 발가벗긴 채 포퓰리즘의 제물로 바치려 한다. 앞으로는 어떤 기업도 자본감소 목적 외에는 자사주를 취득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한국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신주와 사채 발행밖에 없다. 이익이 조금 남는 해에 자사주를 취득한 후 추후 재무 사정이 어려울 때 이를 처분하거나 교환사채 발행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실제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때 자본시장연구원은 상장회사 일부가 자금 압박에 처할 것이라 분석했고 그러한 자금 압박 속에서 상장회사들은 자금 조달 개선 목적으로 자사주를 대거 처분했다. 그 처분액은 5개년(2019~2023년) 중 최대인 것으로 확인됐다. 자사주 의무 소각은 기업이 위기에 처한 때 가용할 재무 운용 수단까지 박탈해버린다.
미국 다수의 주 회사법은 회사가 자사주를 취득하면 소각된 것으로 간주하므로 우리도 따라야 마땅하다는 주장도 있다. 최소 34개 주가 이렇게 정하고 있으므로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 이들 주에서는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신주를 발행해 주주 아닌 누구에게든 배정할 수 있으므로 자사주를 소각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전체 맥락은 보지 못하고 단편적인 규제만 도입하자는 단견일 뿐이다.
한국은 상법 제418조에서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강하게 보호해 제3자 발행을 엄격하게 규제한다. 물론 미국에서도 제3자 배정은 경영 판단 원칙이 적용되며 이사의 신인의무를 통해 통제된다. 자사주 소각이 주주가치 상승에 기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근본적으로 기업가치 향상에는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으므로 주가는 늘 반짝 상승효과뿐이었고 예외 없이 금세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상법 개정으로 주가지수가 상승했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