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36주차 산모에게 낙태 수술을 한 혐의로 기소된 병원장과 집도의가 첫 재판에서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반면, 낙태 수술을 받은 산모는 “살인 공모 사실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병원장 윤모 씨(80)와 집도의 심모 씨(61)는 검찰이 적용한 살인 혐의를 모두 시인했다. 환자를 알선한 브로커 한 씨와 배 씨도 혐의를 인정했다.
그러나 낙태 시술을 받은 20대 A씨는 “낙태 목적으로 시술을 의뢰해 태아가 사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살인을 공모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또 “태아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모르고 고의도 없었다”며 살인 혐의를 부인했다.
A씨는 지난 6월 27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올려 임신 36주차에 낙태 수술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A씨와 수술을 집도한 의료진을 살인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 수사 결과, 고령의 병원장 대신 대학병원 의사 출신인 심 씨가 제왕절개로 태아를 출산시킨 뒤 미리 준비한 사각포로 덮고 냉동고에 넣어 살해한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윤 씨는 진료기록부에 ‘출혈 및 복통 있음’이라고 허위 기재해 태아가 사산한 것처럼 꾸몄고, 사산 증명서도 허위로 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 씨는 병원 경영난을 이유로 낙태 수술을 통한 수익 확보를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22년 8월부터 2024년 7월까지 입원실 3개와 수술실 1개를 운영하며 낙태 환자만 받았고, 심 씨는 건당 수십만 원의 사례비를 받고 수술을 집도했다. 이 기간 브로커들이 소개한 환자는 527명, 이들로부터 윤 씨가 취득한 수익은 총 14억6000만 원에 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들은 3억1200만 원을 나눠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병원장과 집도의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그러나 올 6월 병원에서 낙태 수술을 받은 산모가 수백 명에 달한다는 정황을 추가로 확인한 경찰은 보강 수사 끝에 영장을 다시 청구했고, 법원은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현행 모자보건법상 임신 24주를 넘긴 낙태는 불법이지만, 2019년 4월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처벌 규정은 없는 상태다.
다만 경찰은 36주 태아는 자궁 밖에서도 독자 생존이 가능한 만큼 일반적인 낙태 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서울의 한 산부인과 의사가 임신 34주 태아를 제왕절개로 출산시킨 뒤 물에 넣어 질식사시킨 사건이 있었다. 법원은 이 사건에 살인죄를 적용해 유죄를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