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자유·연대·법치 가치 담은 K민주주의와 한류

이숙종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특임교수

'평화 지향' 韓시위, 놀이식 진화

K팝 등 한류엔 자유 담겨 호소력

'민주가치 세계 확산 기여' 공통점

이숙종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특임교수이숙종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특임교수




해외에 나가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첫째는 한국과 같은 수준 높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계엄령이 웬일이며 또한 어찌 그리 빨리 민주주의가 회복됐느냐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의 음악·드라마·음식 등 한류에 대한 감탄이다. 외국인들이 감탄하는 K민주주의와 한류는 자유, 연대, 법치 질서라는 민주주의 핵심 가치에서 공통점이 있다.

정권의 독재화를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으로 막지 못할 때 시민 저항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는 최후의 보루다. 한국의 경험은 독보적이다. 독재 정권 시절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은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이어졌고 1987년 6월 시민항쟁은 민주주의로의 체제 전환을 가져왔다. 민주화 이후 항의 방식은 평화적 촛불시위 형태로 변모했다. 그 효시는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2명의 여중생이 사망한 사건 이후 벌어진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 운동이다.



소셜미디어의 대두와 함께 한국의 시위 문화는 급속하게 디지털화했다. 2007년 30개월 이상의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운동으로 전개됐던 이른바 ‘광우병 파동’은 가짜 뉴스 논란에도 인터넷의 위력을 보여줬다. 어느덧 소셜미디어는 정당이나 시민단체와 같은 조직을 떠나 더욱 사인화돼가는 개인들을 연결하고 결집시키는 소통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2016년 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운동은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소셜미디어 소통을 거쳐 대규모 집단행동으로 이르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줬다. 8년 후인 지난해 말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계엄은 다시금 대규모 대통령 탄핵 운동을 벌이는 계기가 됐고 촛불은 콘서트 응원봉으로 교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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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민주주의 요체 중의 하나로 정보기술(IT)이 꼽히지만 개발도상국에서도 소셜미디어의 힘은 막강하다.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한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경우도 분산돼 있는 개인들을 결집시킨 것은 소셜미디어였다. 최근 민주화가 일어났던 스리랑카·방글라데시·네팔에서도 소셜미디어가 부패한 엘리트층에 분노한 시민들을 결집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IT 인프라가 불충분해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화적으로 시작된 항의 시위는 공권력과 시위자 양측 모두의 폭력을 수반하게 된다. 민주주의 수준이 높은 나라인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도 항의 시위는 종종 폭동을 수반한다. 이들에 비해 한국의 시위 문화는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평화적이고 질서정연하다. 권위주의 시대의 폭력적 억압과 시민들의 희생이 절대로 다시 있어서는 안되고 폭력적 수단은 결코 명분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에 더해 한국의 시위는 어느덧 대중가요와 문화 퍼포먼스가 들어가는 놀이 식으로 진화했다. 이러한 방식은 평소에 극히 개인적 관심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시민들로 하여금 비상시에 광장의 대의를 위해 길거리로 나서기 쉽게 만든다.

자유와 연대의 가치는 한류에서도 보여진다. K팝 가사들은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노래하면서도 다름을 수용하는 개방성으로 서로 다른 문화권을 넘어서 호소력을 갖는다. 외국인들은 K드라마를 보면 가족애, 타인 배려, 겸손의 미덕, 정의 구현을 보여줘 공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가 된 것도 유사한 호소력 때문일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방미 당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한국이 친위 쿠데타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노래와 율동 같은 문화적 행동으로 막아냄으로써 새로운 민주주의의 전형을 보여줬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최근 문화예술적 활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아티비즘(artivism)을 연상시킨다. 예술 ‘아트’와 활동주의 ‘액티비즘’을 결합한 이 말은 미술·음악·영화·공연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가들이 사회적·정치적 대의를 옹호하고 비판적 사고와 의식화를 도와 사회 변화를 도모하는 새로운 운동 전략이다. 한국의 평화적이고 질서 있는 시위 문화가 해외에서 어떻게 차용될 수 있을지는 연구가 필요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유와 연대, 법치 질서를 담지한 K민주주의와 한류는 민주적 가치의 세계적 확산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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