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보수 성향의 일본 공명당이 26년간 이어온 집권 자민당과의 연립 정권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강경 보수로 ‘여자 아베’라고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자민당 총재가 등장한 후로 정치자금 개혁과 정책 노선을 둘러싼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이에 따라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 자리를 노리는 다카이치 총재의 총리 지명이 불투명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사이토 데쓰오 공명당 대표는 이날 오후 1시 45분부터 다카이치 총재와 1시간 반가량 회담을 갖고 연립에서 이탈하겠다는 방침을 전달했다. 사이토 대표는 회담 후 기자들에게 “자민·공명 연립은 일단 백지로 돌리고 지금까지의 관계에 마침표를 찍겠다”고 밝혔다. 앞서 공명당은 양당의 연립에 관한 최종 판단을 사이토 대표와 니시다 마코토 간사장에게 일임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중도 보수 성향의 공명당은 1999년부터 자민당과 손잡고 협력해왔다. 자민당이 과반 의석을 잃을 때마다 공명당은 선거 협력과 의회 내 조율을 통해 정권의 안정판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9~2012년 민주당 정권 시절에도 양당은 공조하며 보조를 맞췄다.
하지만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 이후 이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상황은 급변했다. 정치자금 규제 방안을 둘러싸고 공명당은 기업·단체로부터의 정치 후원금 수령 대상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반면 자민당은 자금 흐름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논리를 주장했다. 공명당은 이번 회담에서도 자민당으로부터 구체적인 답변을 얻지 못했고 결국 연정 파기를 결단한 것이다. 사이토 대표는 “정치자금 문제에 대해 자민당 측이 향후 답을 주겠다는 말만 반복했다”며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공명당의 연립 이탈은 자민당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자민당은 중의원(하원) 의석이 196석으로 과반(233석)에 한참 못 미친다. 이에 따라 주요 정책 추진이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중의원에서 공명당은 24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입헌민주당 148석, 일본유신회 35석, 국민민주당 27석 등으로 구성된다.
총리 선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는 진단도 나온다. 총리 지명 선거가 이달 21일 실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다카이치 총재는 일본 최초 여성 총리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자민당·공명당 연립에서 공명당이 빠질 경우 입헌민주당·국민민주당·일본유신회 등 야당 3당보다 의석수가 적어 지게 된다. 다카이치 총리 선출이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여전히 자민당은 일본 최대 정당인 데다 야당들의 정치적 견해 차도 커 다카이치의 총리 선출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는 진단도 많다. 연립에서 이탈한 공명당은 이번 총리 선거에서 사이토 대표의 이름을 적겠다고 밝혔다.
공명당의 지원을 잃게 된 자민당은 향후 선거에서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이 제기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공명당과 협력하지 않았다면 지역구 의원 132명 중 25명이 낙선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닛케이는 “공명당의 지지 기반인 창가학회의 조직 동원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있지만 여전히 한 소선거구당 2만 표 정도의 공명당 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접전 지역의 경우 이 표 덕분에 자민당이 간신히 승리하는 사례가 많다”고 진단했다.
차후 일본의 대외 외교 일정 등도 줄줄이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달 26일부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정상 외교 일정이 계획된 상황이다. 이에 총리 선출이 원만하지 않을 경우 외교 행사가 혼선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