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노르웨이 오슬로에 깜짝 방문했다. 그의 방문이 놀라운 이유는 마차도가 베네수엘라 당국의 구금 위협 속에서 1년 가까이 은신해왔기 때문이다. 마차도는 노벨상 시상식에 맞춰 오슬로로 향하기 위해 약 두 달에 걸쳐 베네수엘라를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발로 변장하고,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등 그의 탈출은 ‘007 작전’을 방불케한다.
10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마차도는 8일 노벨상 시상식에 맞춰 노르웨이에 도착하기 위해 가발을 쓰고 변장한 채 탈출길에 올랐다.
최근 1년간 수도 카라카스 외곽 지역에 은신하던 마차도는 배를 타고 베네수엘라를 빠져나가기 위해 한 어촌 마을로 향했다. 조력자 두 사람과 함께 약 10시간에 걸쳐 군 검문소 10곳을 통과했고, 그때마다 체포망을 피해야 했다.
심야에 겨우 목적지에 도착한 마차도에겐 더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무로 만든 작은 어선을 타고 카리브해를 건너 네덜란드령 퀴라소로 향한 것이다. 9일 새벽 5시 마차도를 태운 목선이 출항했지만, 강한 바람과 파도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고 WSJ은 전했다.
미군의 공습 우려도 있었다. 미군이 최근 3개월간 베네수엘라 인근 해역에서 선박 20여 척을 공습해 80명 이상을 사살했다는 점에서 오인 사격의 위험이 컸다. 이와 관련, 지난 두 달간 마차도의 탈출 준비를 도운 국외 망명 조력 단체 '베네수엘라 네트워크'는 출항 전 미군에 연락을 취해 탑승자 정보를 알렸다고 WSJ에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역시 이 작전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전후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이 전했다. 실제 비행 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마차도가 해상을 건너던 시점에 미 해군 F-18 전투기 두 대가 베네수엘라만으로 진입해 약 40분간 선회 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9월 미군이 카리브해에서 병력을 전개한 이래 베네수엘라 영공에 가장 근접한 비행이었다.
이후 마차도는 9일 오후 퀴라소에 도착해 트럼프 행정부에서 파견한 '탈출 전문' 민간업자와 접선했고, 이튿날 마이애미의 측근이 제공한 전용기를 타고 오슬로로 향했다. 마차도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자신이 베네수엘라를 떠날 수 있도록 "목숨을 걸고 애써준" 수많은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는 짧은 음성 메시지를 녹음했다고 WSJ은 전했다. 이러한 탈출 과정은 노벨위원회조차 시상식이 시작될 때까지 그녀의 행방을 알지 못할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됐다. 결국 10일 오슬로에서 열리는 시상식 시간에는 맞추지 못해 노벨평화상은 그의 딸인 아나 코리나 소사 마차도가 대신 받았다. 미국에 거주 중인 것으로 알려진 소사 마차도는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어머니의 활동을 돕고 있다. 대신 11일 새벽 대중 앞에 서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등 공개 행보를 시작했다.
마차도는 유럽 여러 나라를 순방하고 워싱턴DC도 방문할 계획이라고 마차도 측 관계자가 전했다. 다만 마차도가 베네수엘라로 돌아가면 체포,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 마차도는 "그들(베네수엘라 정부)은 내가 테러리스트이며 평생 감옥에 있어야 한다면서 나를 찾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베네수엘라를 떠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노르웨이에서 다시 베네수엘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을지를 두고도 우려가 크지만, 마차도는 "(베네수엘라로) 당연히 돌아갈 것"이라며 "내가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의를 위해 내가 가장 필요한 곳에 있을 것"이라며 "얼마 전까지는 그곳이 베네수엘라라고 믿었지만, 오늘 대의를 위해 있어야 할 곳은 오슬로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10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철권통치에 맞서 베네수엘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는 마차도를 "베네수엘라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증진하고 독재 체제를 평화적으로 민주주의로 전환하기 위해 투쟁한 공로가 있다"며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