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군이 추진 중인 신형 전함에 ‘트럼프급 전함’이라는 이름을 붙이겠다고 발표하자 전통에 어긋난 결정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군함급 명칭에 사용하는 것은 이례적일 뿐 아니라 건조 계획이 아직 초기 단계인 상황에서 이름부터 공개한 것 역시 논란을 키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존 필런 미국 해군장관은 22일(현지 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트럼프 대통령 자택 마러라고에서 열린 행사에서 이 같은 명칭을 공식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지금까지 건조된 어떤 전함보다 훨씬 빠르고 크며, 100배 더 강력할 것”이라며 “미국 해군이 이 배의 설계를 나와 함께 이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매우 미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표현도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배수량 3만~4만t급 전함이 향후 수년에 걸쳐 건조돼 총 20~25척이 완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함은 항공모함보다는 작지만 배수량 수만t에 이르는 대형 수상 전투함이다. 미국 해군은 19세기 말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전함을 주력 전력으로 운용했다. 그러나 항공모함과 미사일 체계가 중심이 된 이후 전함은 점차 퇴장했고, 미 해군이 전함을 실전에 투입한 마지막 사례는 1991년 걸프전이었다. 최후의 전함인 ‘USS 미주리’는 1992년 퇴역한 뒤 현재 하와이 진주만에서 박물관으로 보존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트럼프급 전함 로고에는 지난해 7월 암살 시도 직후 주먹을 치켜든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이 담겼다. 아직 설계도 완성되지 않았으며, 첫 함정으로 예정된 ‘USS 디파이언트’는 이르면 2030년대 초 취역할 것으로 거론된다.
외신들은 이 같은 명명 방식이 미 해군의 기존 관례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 해군은 통상 해당 급의 첫 번째 함정 이름을 따 급 명칭을 정해왔다. 예컨대 ‘USS 아이오와’가 첫 함이면 동일 설계의 함정들은 ‘아이오와급’으로 불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번 계획에서는 급 명칭은 ‘트럼프급’인 반면 첫 함정 이름은 ‘USS 디파이언트’로 예정돼 있어 이름이 다르다.
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군함에 사용하는 것 역시 관행에서 벗어난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해군은 20세기 초 한동안 생존 인물의 이름을 군함에 붙이는 것 자체를 꺼려왔고, 1974년 정책 변경 이후에도 현직 대통령이나 장관의 이름은 피해왔다. 최근에는 항공모함에 퇴임한 전직 대통령 이름을, 전함에는 주(州) 이름을 붙이는 사례가 많았다.
아직 건조 계약조차 체결되지 않았고 설계도 초기 단계에 불과한 상황에서 군함과 군함 급의 이름을 먼저 정한 점도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계획 자체가 실제 건조로 이어질지 불확실하다는 관측도 제기한다.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전략국제연구소(CSIS)의 마크 캔션 국방·안보 선임고문은 “기존 함정과 크게 다른 대형 선박을 새로 개발하려면 최소 4~6년이 필요하다”며 결국 계획이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현재 구축함 한 척의 건조 비용이 약 28억 달러인 점을 감안할 때, 트럼프급 전함이 실제로 건조될 경우 척당 100억~120억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실제로 과거에도 계획만 발표되고 취소된 전함 사업은 존재한다. 1940년대 몬태나, 오하이오, 메인, 뉴햄프셔, 루이지애나 등의 이름이 붙은 ‘몬태나급 전함’ 5척을 건조하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단 한 척도 완성되지 않은 채 1943년 전면 취소됐다.
이번 논란은 트럼프 대통령이 공공기관과 시설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려는 최근 행보와도 맞물린다. 그는 미국 평화연구소(USIP)의 명칭을 ‘도널드 J. 트럼프 평화연구소’로 바꾸겠다고 밝힌 데 이어, 워싱턴DC의 존 F. 케네디 기념 공연예술센터에도 자신의 이름을 병기하도록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