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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와 경기 위축 속에 주식시장은 올해도 박스권 장세를 탈피하지 못했지만 128개 기업이 한국거래소에 상장하면서 기업공개(IPO) 시장은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코스피(유가증권시장)와 코스닥을 아우른 올해 상장 기업 수는 총 128개에 달해 벤처 붐이 일었던 2002년 이후 13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IPO 시장은 상장사에 투자확대와 이익 실현을 위한 자금조달 역할을 하면서 투자자에게도 올해 15% 안팍(코스피 기준)의 짭짤한 수익률을 안겼다. 바이오·화장품 등 일부 업종에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하반기 들어 시장이 얼어붙기도 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연말 공모주 시장이 서서히 살아나며 다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은 29일 한 해 IP0 시장을 결산하고 새해 IPO 시장 전망과 수익성·트렌드를 짚어보기 위해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김병률 한국거래소 유가시장본부 상무와 정영채 NH투자증권 IB 사업부 대표, 김상태 대우증권 IB사업부문 대표, 신원정 삼성증권 IB사업본부장이 참석했다. 사회=이학인 증권부장
△사회=먼저 올 한 해 IPO 시장을 정리해보자.
△김병률 거래소 유가시장본부 상무=연초에는 국내 증시가 좋지 않아 IPO 시장도 어려울 것으로 봤는데 유가증권시장은 상장기업 수가 120% 이상 성장했다. 코스닥도 50% 넘게 상장 건수가 증가했다. 공모금액은 지난해(4조8,770억원)에 비해 소폭 줄었지만 제일모직·삼성SDS 같은 눈에 띄는 대기업 없이도 4조5,000억원이 넘었다는 점에서 선전했다고 볼 수 있다.
△정영채 NH투자증권 IB사업부 대표=올해 IPO 시장은 상장사의 다양성이 확보되면서 질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코스피에 다양한 분야의 기업이 상장하고 코스닥에는 바이오·화장품 등 신수종 사업을 하는 기업이 많이 들어왔다. 고평가 논란도 있었지만 신성장 기업에 기회가 주어지며 새 시장이 열렸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신규 상장사에 별다른 회계문제도 없어 기업 투명성이 많이 확보됐다고 평가하고 싶다.
△김상태 KDB대우증권 IB사업부문 대표=지난해 제일모직 등 대기업이 상장해 관심을 모았다면 올해는 상장 방식이 다양해져 스팩(SPAC) 합병, 기술성 평가 등으로 많은 기업이 증시에 들어왔다. 사모펀드(PEF)가 투자한 기업도 증시에 올라오고 SK D&D 같은 부동산 개발 회사가 처음 상장한 것도 눈에 띈다. 하반기 들어 공모주 청약 일정이 몰리면서 일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성장통인 측면이 있고 이를 통해 개선 방안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신원정 삼성증권 IB본부장=사실 지난해 IPO 시장이 호황을 누려 올해는 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전통 제조업 등 소위 '구경제'는 IPO 시장에서 많이 힘을 잃었지만 바이오와 화장품·정보통신기술(ICT) 쪽에서 치고 올라왔는데 규제 완화에 힘입은 바 크다고 본다.
△사회=내년 IPO 시장은 어떤 업종이 이끌 것으로 보는가.
△신 본부장=내부적으로 IT·바이오·화장품 등을 '신경제'로 분류하고 있는데 내년에도 이들 산업에 속한 기업들은 상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본다.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회사들도 많다. 투자자들 역시 자동차·석유화학 등 전통 기업보다는 신경제 부문을 더 선호하고 있어 이 같은 흐름에 맞춰갈 수밖에 없다. 현재 공급과잉 문제가 불거진 전통산업은 1~2년 조정 과정을 통해 '살아남은' 회사는 향후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김 대표=내년에도 올해처럼 중국 소비재 관련 기업, 바이오·게임·모바일 등 성장성을 갖춘 회사들이 높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기존 제조업 기반 회사들은 '홀대'를 받았는데 이는 한계에 달한 이들 기업의 성장성에 대한 시장의 냉정한 평가인 만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정 대표=기존 산업 가운데서도 구조적 모순에 빠진 산업을 제외한 제조업체들은 내년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환율에 대한 수출 및 제조업체의 연초 기대 환율은 달러당 1,030원대였는데 올해 평균 1.150원을 넘고 있다. 10% 넘는 가격경쟁력이 생겼다. 지난 2000년 초반에도 공모 시장에서 "전통 산업은 끝났다"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1~2년 후 보면 고수익을 안겨준 곳은 모두 전통산업에 속해 있었다. 신수종 산업에서도 '차별화' 흐름이 나타날 것이다.
△김 상무=시장에서 IPO와 관련해 정부와 거래소에 원하는 것은 딱 하나다. 내년에 어떤 기조를 가져갈 것인지 명확히 메시지를 달라는 것인데 지난해부터 추진한 상장 활성화 정책은 흔들림 없이 유지된다. 내년에 22개사 정도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올해보다 5개나 많다. 또 호텔롯데라는 대어가 있다. 상장기업 수뿐 아니라 내년에는 2010년 8조7,000억원의 총공모 금액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고 본다.
△사회=거래소가 해외 기업의 국내 상장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데 성과가 있을까.
△김 상무=LS전선의 아시아법인은 이미 상장을 확정해 내년 상반기 승인이 날 것 같다. 이탈리아 화장품 업체인 인터코스도 상장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기업의 상장 유치에 힘쓰고 있는데 내년부터 두 나라의 국영기업이나 대기업 등에서 한국거래소에 상장하는 곳이 나올 것 같다. 증권사들과 현지 설명회도 내년에 많이 나가려고 한다. 미국과 유럽 지역도 노력하고 있는데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은 곳이다.
△사회=증권사들은 어떤 기업들의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신 본부장=우리(삼성증권)는 최근 대기업의 IPO만 주관한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중소기업도 수익률이 좋다. 주관사를 맡든, 인수단으로 참여하든 많은 기회를 발굴하려고 하고 있고 특히 내년에는 중소기업 상장을 많이 할 계획이다.
△김 대표=대표 주관사를 맡은 호텔롯데의 IPO 작업을 내년 상반기 내 조기에 마무리하는 것이 급선무다. 롯데그룹이 큰 결정을 했는데 호텔롯데 상장 후 많은 기업이 상장을 시도하면서 IPO 시장에서 롯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정 대표=우리는 올해 전통산업과 신수종 사업을 불문하고 많은 기업을 상장했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어떻게 자본시장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드느냐다. 시장 질서를 깨뜨리는 기업은 지양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최대한 많은 회사가 상장할 수 있도록 길을 닦으려고 한다.
△사회=공모주 시장의 쏠림이나 양극화 문제를 보완할 대책은 없나.
△김 상무=양극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거래소도 매우 곤혹스럽게 생각한다. 시장의 흐름을 반영하는 현상이지만 증권사들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신규 상장하는 기업이 스스로 가치평가를 냉정하게 해야 한다. 그럴 수 있게 보완도 하려고 한다. 기관투자가도 선도적 역할을 해줘야 한다.
△사회=마지막으로 IPO 시장 발전을 위해 개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 대표=IPO는 짧게는 7~8개월에서 길게는 2~3년 걸리는 일이다. 그동안 증권사가 기업에 계속 자문을 하는데 그런 수고에 비해 수수료는 매우 낮은 편이다.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는 없지만 정상화하려면 결국 증권사가 기업 상장 업무에 대해 책임을 지고 많은 역할을 하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신 본부장=규제 개혁은 방향만 확실하면 시간 차이가 있을 뿐 실현될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당국이 일관성 있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김 상무=기업공개 활성화는 일관된 방향이다. 내년에는 IPO 관련 기관과 올해보다 더 많은 접촉을 하고 소통을 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손톱 밑 가시' 같은 규제들이 있는지 살펴 선제적으로 제거할 것이다. 증권사가 IPO 시장에서 마음껏 활동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 /정리= 지민구·박준석기자 pjs@sed.co.kr 사진= 이호재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