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연구기관 촉구/「은행 폐쇄」 등 먼저 고쳐야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 내건 이행조건에 지나치게 무리한 사항들이 많아 한국의 경제기반마저 뒤흔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에따라 새 정부 출범과 함께 IMF와의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9일 재계와 민간 연구기관들에 따르면 IMF가 요구한 이행조건 중 ▲25%의 고정금리 유지 ▲부실은행 폐쇄 등 상당부분이 국내 금융기반의 와해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IMF가 구제금융을 제공한 다른 국가에는 내걸지 않았던 통상산업정책까지 들먹거린 것은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수입선 다변화=현대경제사회연구원의 정순원 상무는 『한국은 이미 세계무역기구(WTO)와 협상을 통해 오는 99년부터 개방을 약속해놓은 상태』라며 『IMF보다 상위기구라 할 수 있는 WTO와 합의를 해놓은 터에 이런 조건을 내건 것은 재고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입선 다변화 정책을 쓸 경우 국제수지의 악화가 불가피하며 이는 국제수지 호전을 요구하는 IMF의 주장과도 괴리가 있다고 밝혔다.
◇고금리 유지=IMF가 이번에 내건 금리수준은 25%. 금융계와 재계에서는 IMF의 조건이 기업의 투자축소는 물론 연쇄부도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부채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기업들에 25%의 초고금리가 고정화될 경우 지나친 금융부담으로 부도도미노는 불가피하며 이는 금융권과 산업계의 공멸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은행 폐쇄=IMF가 부실은행을 폐쇄토록 한 것도 한국의 금융시스템을 무시한 처방이라는 게 금융계의 일치된 의견이다.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등은 은행들이 대부분 소규모인 반면 한국은 예금자수가 수백만명에 이르며 은행을 폐쇄할 경우 그 파장이 엄청나 금융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적대적 M&A 허용=IMF와 한국정부는 이번에 외국인 1인당 투자한도를 7%에서 50%로 확대하면서 일단 적대적 인수합병(M&A)은 제외했다. 그러나 합의문에는 「여타 선진국 기준에 맞춰 적대적 인수행위에 대한 법률안을 임시국회에 제출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이는 사실상 적대적 M&A를 허용한 것으로 결국 우량기업의 상당수가 외국인의 손에 넘어간다는 것을 말한다고 지적했다.<김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