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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직장인 술안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슈가 리더십이다. 드라마 '미생'은 직장상사의 리더십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렸다. 이 드라마에는 다양한 종류의 리더십이 등장한다. 자기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성식 과장, 따뜻한 말 한마디로 사기를 북돋워주는 김동식 대리 같은 캐릭터는 직장인들로 하여금 "나도 저런 상사 밑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
그만큼 직장인들 마음속에는 부드러운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 잠재돼 있는 것일까.
이 관점에서 볼 때 금융산업은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ㆍ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이론)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곳이다. 잇따른 지배구조 리스크는 과거 제왕적 리더십의 폐단을 날것 그대로 드러냈고 그 자리를 포용의 리더십이 채우고 있다.
25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 당국과 금융계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물갈이되면서 CEO들의 리더십 성향도 확연히 바뀌었다.
우선 금융감독원의 경우 과거 이헌재·윤증현 전 원장(금융감독위원장 겸임)의 경우 존재 그 자체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품어 내면서 시장을 휘어잡았다.
이 전 원장의 경우 외환 위기 이후 장악력을 통해 구조조정을 집도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금감원의 힘을 유지시켜주는 근원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임 최수현 원장 역시 이 전 원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름 시장에 대한 금융 당국의 권위를 지키려 했고 떠나기 직전 금융 CEO들에 대한 마지막 강연자리였던 지난 10월 '서경금융전략포럼'에서도 '질서'의 중요성을 강도 높게 설파했다.
하지만 진웅섭 현 원장 취임 이후 금감원의 행보는 확실히 바뀌었다. 본인 스스로 '백조론'에 이어 피천득 시인의 수필 '플루트 플레이어'를 인용, '무음의 플루트 연주자' 같은 금감원이 될 것을 직원들에게 당부하면서 '조용한 파수꾼'이 돼 달라고 요청했다.
민간부문의 리더십 변화는 더욱 명확하다.
지난 MB정부 때만 해도 강한 카리스마의 CEO가 수두룩했다. 이름에서부터 제왕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4대 천왕(강만수·어윤대·김승유·이팔성)'은 말할 것도 없다.
이순우 우리은행장,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 신동규 전 NH금융그룹 회장, 김용환 전 수출입은행장 등도 '한 카리스마' 했던 금융인들이다. 여기에 이장호 전 BS금융그룹 회장, 하춘수 전 DGB금융그룹 회장, 박근희 전 삼성생명 부회장, 최치훈 삼성물산 대표(전 삼성카드 사장) 등도 카리스마 대결에서 지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카리스마적 기질을 통해 조직을 장악했다.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 소프트파워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과 임종룡 NH금융그룹 회장은 대표적 인물이다.
윤 회장의 경우 "윤종규표는 중요하지 않다. KB표가 중요하다"며 본인이 과도하게 드러나는 것을 싫어한다. 임 회장 역시 최원병 농협중앙회장 아래에서 도드라지지 않는 행보를 보이면서도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압도적인 실적을 내고 있다.
조 전 행장의 강한 리더십 이후 우려가 됐던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여성 특유의 디테일 경영으로 3년 만에 당기순이익을 상승 곡선으로 반등시켰다.
여기에 성세환 BS금융그룹 회장이나 이광구 우리은행장 내정자 등도 큰 줄기에서 '포용의 리더십'이다.
재벌 계열의 금융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엿보인다. 삼성생명의 경우 전임 박 전 부회장과 달리 김창수 현 사장은 활동적이지 않으면서도 구조조정을 착실하게 해나가는 전형적인 '삼성식 경영'을 해나가고 있고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도 역동적인 것보다는 조용함을 추구하고 있다.
금융 CEO들의 리더십이 변한 데는 많은 이유가 따라 붙겠지만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제왕적 리더십의 실패다.
1인자와 2인자 간 권력다툼으로 조직이 무너졌던 신한금융그룹·KB금융그룹에서 소프트 리더십이 뒤이어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수십년간 이어져 온 라응찬 전 회장과 신상훈 전 사장의 동료애가 깨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1년이 채 안 걸렸다. 서로 다른 줄을 타고 내려온 어윤대 전 회장, 임영록 전 회장, 이건호 전 행장은 출범 때부터 삐걱거렸다.
권력의 제1 속성이 바로 독점에 대한 갈망이다. 한쪽이 강하면 나머지 한쪽이 부드러워야 공존이 가능한데 제왕적 리더십이 상충하다 보니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다. 서번트 리더십 이후에는 또 다시 강력한 카리스마 시대가 도래할지 지켜볼 일이다. @s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