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을 소재로 뮤지컬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 음악과 ‘딩동댕’ 종소리가 너무나 정겹게 다가올 테다. 부산 아지매가 롯데 자이언츠 야구복을 입고 ‘부산 갈매기’를 부르면 그 자체로도 매우 흥미롭다. 사회자가 “이 분은 무대까지 올라오시는데 10분이 걸려요. 충청도에서 왔거든요”라고 말할 때 객석은 웃음바다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공연이 바다를 건너 영국에서 공연한다면 과연 몇 명이나 공감할까?
지난 17일 대구국제뮤지컬 페스티벌이 공식 개막했다. 첫 공연은 지난해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유로비트’였다. 유럽의 송콘테스트인 ‘유로비전’을 패러디한 코미디 뮤지컬이다. 이탈리아, 아이슬란드 등 10개국을 대표한 가수들이 춤과 노래를 선보인 뒤, 관객이 현장에서 직접 투표를 해 1등을 선발하는 관객참여형 설정이 특징이다.
공연에는 유럽각국의 정치, 문화를 비꼰 코미디가 자주 등장한다.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양념 역할이었다. 하지만 국내 관객들에겐 어색하기만 했다. 공연 중 사회자가 이탈리아를 소개하면서 ‘양말보다 더 자주 정부를 갈아 치우는 나라’라며 너스레를 떨어도 객석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의원내각제 국가 가운데 내각총사퇴와 의회해산이 가장 빈번한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을 꼬집은 코미디가 관객들에겐 그리 와 닿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무대에서 선보인 10개 팀의 공연 내용은 비교적 무난했다. 나나 무스쿠리를 흉내낸 그리스의 섹시 여가수, 그룹 아바(ABBA)를 모방한 스웨덴의 혼성그룹 등 각국의 특색을 살려 객석의 호응을 이끌었고, 음악도 무리가 없었다. 이 날 공연에는 기술적 문제로 인해 관객의 문자메시지 투표 집계가 이뤄지지 못했다. 오는 9월 영국 웨스트엔드에 진출하는 이 공연은 투표를 한 뒤 개표 결과에 환호성을 지르는 관객 호응도 공연의 일부이다. 22일까지 대구 오페라하우스, 25일~7월 6일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한편 대구국제뮤지컬 페스티벌에서는 7월 7일까지 제작비 85억원의 중국산 뮤지컬 ‘버터플라이’,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을 뮤지컬로 개작한 ‘마이 스캐어리 걸(My scary girl)’ 등 다양한 작품이 소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