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캐릭터는 시대의 반영=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는 당대의 시대상이자 시대가 원하는 아이콘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들이 점점 더 강한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드라마 속 여성 직업은 승무원, 아나운서, 간호사, 선생님 등 전통적인 ‘여성 직업’이자 ‘이상향’의 직업군이었으나, 최근에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져 계약직, 아르바이트생, 취업준비생 등 현실적인 직업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드라마 속 남녀 관계 설정 또한 급변하는 추세다. 가난하지만 예쁜 ‘캔디형’ 여자 주인공이 키다리 아저씨 같은 상사의 애틋함의 대상이었지만, 최근 여자 주인공들은 오직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칠뿐이며 상사가 아닌 동료 정도와 ‘썸’을 타는 수준의 연애 감정을 잠시 느낄 뿐이다. 이렇게 캐릭터가 변화하면서 1990년대만 해도 조연에 머물거나 크게 대중의 이목을 끌지 못했을 여배우들의 전성시대가 온 셈이다.
◇1990~2000년대 초 예쁜 승무원이 대세=몸에 딱 붙는 유니폼에 올림머리를 하고 환하게 미소 짓는 사진 한 장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 박주미는 당대를 대표하는 미녀 배우이자 ‘승무원 신드롬’, ‘승무원 판타지’ 등을 일으킨 주인공이었다. 대중이 갈망하는 이미지를 가진 그를 복사하기라도 하듯 드라마에는 여성 승무원이 대거 등장한다. 김혜수(MBC ‘짝’), 신은경(MBC ‘파일럿’), 김희선(SBS ‘요조숙녀’), 황신혜(MBC ‘천생연분’) 등 수많은 여배우들이 승무원 역할을 했다. 이 외에도 여자 아나운서들의 세계들 다룬 ‘이브의 모든 것(MBC)’ 등 수 많은 작품에서 ‘워너비 여성’의 직업으로 아나운서가 설정됐다. 이러한 직업이 아니더라도 당시 드라마 속 여성들은 온갖 시련을 몰래 눈물을 훔치며 묵묵히 견뎌내는 전통적 여인이었다.
◇2017년엔 생존투쟁 처절한 비정규직들=계약직이나 취준생은 이제 드라마 속 흔한 직업이 됐고, 여성 캐릭터들은 점점 더 세지고 있다. ‘힘쎈여자 도봉순’(JTBC)에서 도봉순(박보영)은 고졸 스펙이지만 힘만은 무시무시해 경호원으로 취직을 한다. 정규직을 목표로. 또 ‘자체발광 오피스’(MBC)의 은호원(고아성)은 맨바닥에 무릎까지 꿇으며 고객의 민원을 무마시켜 정규직에 한 발자국 다가서려 처절하게 몸부림친다. 이 외에도 숱한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망가지고 또 망가진다. 또 예전 드라마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목에 핏대를 세우고 악을 써대거나 비굴하기 비굴한 캐릭터들도 다수 등장한다.
◇여성 스타 성공공식은 ‘개성’=생존력 강한 여성 캐릭터들이 사랑을 받으면서 여자 주인공들의 외모 또한 커다란 변화를 맞았다. 과거에는 조연급에 머물거나 ‘개성파’ 연예인으로 한정된 배역만 쥐어질 수 있던 여배우들의 전성시대가 시작된 것. 박보영, 서현진, 이유리, 고아성, 공효진 등이 1990년대 데뷔했더라면 현재와 같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고소영, 이영애, 박주미, 김혜수, 황신혜, 김희선, 심은하 등 전형적인 미인만이 여자 주인공에 발탁됐기 때문이다. 배우 매니지먼트사의 한 관계자는 “1990년대 주목받는 여배우들의 경우 주요 시청자층인 여성들의 취향과 기대가 반영된 완벽한 외모의 소유자들이었다면, 요즘은 완벽한 미모보다는 다소 밋밋하더라도 개성 있는 얼굴의 여배우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응이 높아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