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건설사에 아파트 분양용 공공택지의 공공 지원 민간임대주택 리츠 전매를 허용하기로 한 것은 공공택지 개발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기 때문이다. 민간임대 리츠 전매를 허용하면 리츠와 공사 도급계약이 체결돼 건설사 자금난에 숨통이 트이는 한편 분양 리스크도 덜 수 있다. 정부로서는 민간임대주택 건설로 임대 물량도 확보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포석으로 해석된다.
현재도 건설·시행사가 토지 매입 계약 후 2년이 지나면 공공 지원 민간임대 리츠로 사업을 변경할 수 있지만 빠른 주택 공급을 위해 그 전이라도 전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금융 지원에 힘입어 공공 지원 민간임대 리츠 사업이 활기를 띠고 있는 것도 전매를 터주게 된 배경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 개정을 계기로 공공 지원 민간임대 리츠 설립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31일 국토교통부와 안태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시행사가 LH의 공공택지를 분양받았다가 계약을 해약한 건수는 2022년 2건, 2023년 5건에서 지난해 25건으로 급증했다. 분양 대금 연체 금액도 지난해 6월 1조 795억 원, 지난해 12월 1조 2572억 원으로 6개월 사이 16% 증가했다. 부동산 경기가 호황이던 몇 년 전만 해도 공공택지는 건설사들이 당첨을 위해 ‘벌떼 입찰’에 나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현재는 상황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23년 공공택지 개발을 위해 전매 규제를 한 차례 완화한 바 있다. 계약 후 2년이 지났거나 잔금을 납부한 사업장에 한해 지난해 11월까지 한시적으로 전매 특례를 허용했다. 이번 개정안에서도 이 기간을 내년 5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매가 이뤄진 사례는 한 건도 없다. 공공택지 개발의 매력이 떨어진 것이 근본 이유지만 전매 요건이 엄격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요건을 충족하는 사업장 중 이전 정부 방침에 따라 사전청약을 마친 곳들은 공공 지원 민간임대주택으로 전환하고 싶어도 당첨자 동의를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 지난해 제일건설도 비슷한 이유로 인천 영종국제도시 A16블럭의 민간임대 전환에 애를 먹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정부는 이번 개정안에서 사업장을 공공 지원 민간임대 리츠에 매각하는 경우 토지 계약 후 2년이 지나지 않았더라도 전매를 허용해주기로 했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공공 지원 민간임대 리츠를 설립하려면 HUG의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여기에도 평균 1년 6개월이 걸린다”며 “심사 기한을 감안하면 최대한 빨리 전매를 해야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다는 의견이 업계에서 나와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의 전매 특례가 한시 조항인 반면 공공 지원 민간임대 리츠 전매는 별도 기한이 없는 상시 제도라는 점도 차이점이다.
최근 공공 지원 민간임대 리츠의 안정성이 부각되며 활용 사업장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정부의 전매 허용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사업자가 HUG와 함께 공공 지원 민간임대주택 리츠를 설립하면 주택도시기금이 사업비의 최대 20%를 공동 출자해준다. 2%대의 저리 융자와 HUG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보증도 지원된다. 금융 지원과 임대 보증금으로 사업비를 충당할 수 있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지난해 초 공공 지원 민간임대 리츠와 관련해 차입 가능 금융기관을 확대하는 등 제도를 개선했다. 시장 상황과 정부의 지원이 맞물리며 HUG가 출자 승인한 공공 지원 민간임대 리츠 건수는 2022년 8건, 2023년 13건, 지난해 19건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3년간 출자 승인된 총금액은 2조 506억 원에 이른다.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 개정안이 이르면 5월 시행되면 공공 지원 민간임대 리츠 사업이 더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개발 업계의 한 관계자는 “토지 대금이 장기간 묶인다는 단점은 있지만 요즘은 워낙 사업을 끌고가기가 어렵다 보니 민간임대 리츠 전환을 고려하는 사업장이 적지 않다”며 “전매가 뚫리면 이런 사업장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상반기 4500억 원 규모의 공공 지원 민간임대 리츠 출자금을 조기 집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