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청론직설] “전력 못 끌어와 AI칩 있어도 쓰지 못해…연구 인프라 확충 절실”

◆조성배 국가인공지능위원회 기술분과위원장(연세대 특훈교수)

韓 GPU 보유량 美빅테크 1곳보다 적어, 물적 기반 부족

美 대비 10% 미만 투자로 ‘딥시크’ 개발한 中 전략 주목

기술 판도 1% 인재가 좌우, 선도 기술 엘리트 육성해야

데이터 규제 풀고 샌드박스 넓혀 기술 상용화 길 터줘야

조성배 국가인공지능위원회 기술분과위원장이 3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가 양질의 데이터와 인프라를 갖춘 제조업·의료 분야 등에 특화된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에 집중하면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조성배 국가인공지능위원회 기술분과위원장이 3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가 양질의 데이터와 인프라를 갖춘 제조업·의료 분야 등에 특화된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에 집중하면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인공지능(AI) 기술을 둘러싼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 미국의 오픈AI가 2022년 11월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한 ‘챗GPT’를 공개해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주더니 올해 1월에는 중국의 AI 스타트업이 그에 버금가는 성능의 ‘딥시크 R1’을 출시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 기술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성배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특훈교수는 3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AI 연구 인프라와 인재는 미국·중국에 비해 양적으로 매우 부족하다”며 “우리나라가 보유한 AI용 반도체칩 총량이 미국 빅테크 한 곳에도 미치지 못하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AI 칩으로 쓰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전력 소모량이 매우 크므로 데이터센터에 전력 공급 시설을 함께 지어야 하는데 아직 미흡하다”고 전했다. 이어 “일부 대학 연구소는 AI 연구를 위해 GPU를 구해놓고도 전력선을 끌어오지 못해 해당 AI 칩을 쓰지 못하는 경우도 가끔씩 발생하고 있다”며 관련 기반 시설 확충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구글의 AI 알파고 등장 쇼크 이후 10년째에 접어들었다. 그간 AI 기술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알파고가 2016년 바둑계의 인간 최고수인 이세돌 9단을 이기면서 AI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커졌다. 컴퓨터가 스스로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아 학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측하는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이 알파고 개발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머신러닝의 일종인 딥러닝(심층 기계학습)과 강화 학습을 바탕으로 삼았다. 이 기술은 ‘언어모델’ 방식의 AI 개발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언어모델이란 어떤 단어들이 순차적으로 나열됐을 때 그다음에 무슨 단어가 나와야 가장 자연스러운 문장이 될지 추정하는 것이다. 언어모델 알고리즘에서 파라미터(매개변수)들을 엄청나게 늘려주면 AI가 더 복잡하고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사람과 대화하면서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챗봇과 같은 대규모언어모델(LLM) AI가 탄생했다. 근래에는 LLM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계획을 세워 작업하고 다른 AI들과도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에이전트 AI’를 개발하는 데 연구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에는 딥시크 쇼크가 또 다른 기술 트렌드의 물꼬를 트는 것 같다.

△그동안 기술 개발의 기본 추세는 AI가 더 복잡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학습용 데이터 투입량을 확대하고 알고리즘의 파라미터를 늘려가는 방식이었다. 이를 위해 방대한 데이터를 병렬 연산할 수 있는 고성능 컴퓨터가 필요했다. 엔비디아의 GPU가 각광받았던 것은 병렬 연산 방식으로 많은 데이터를 고속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의 딥시크는 미국 빅테크들이 사용했던 고성능 칩보다 성능이 낮은 저사양 칩을 사용해 고성능을 낸 것이어서 놀랍다. 개발사 측은 딥시크 개발에 불과 약 560만 달러만 들어갔다고 했다. 오픈AI가 챗GPT 등을 개발하는 데 1억 달러 이상을 들인 것을 감안할 때 딥시크는 미국 빅테크의 10%도 안 되는 비용으로 비슷한 성능의 AI를 개발한 셈이다.

-딥시크 개발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는가.

△딥시크는 미국 빅테크들의 대용량인 AI와 달리 경량으로 설계됐다. 알고리즘 크기와 데이터양이 적기 때문에 성능이 낮은 반도체칩으로도 빠르게 연산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AI를 만들어낸 것이다. AI 개발의 물적·인적 인프라가 미국에 비해 매우 부족한 우리나라도 고성능 AI 개발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

-한국의 AI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단순 비교는 쉽지 않지만 미국 스탠퍼드대가 발표하는 글로벌 AI 인덱스에서는 우리나라가 7위 정도 했다. 이 정도면 그런대로 잘하는 수준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1위 미국, 2위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주요국들의 기술은 올망졸망 수준이다. 영국·프랑스·캐나다·싱가포르에 이어 우리나라가 비슷한 수준에서 뒤따라가고 있다. 우리가 조금 더 AI 연구개발(R&D)에 집중하면 기술 순위를 지금보다 더 올릴 수는 있다. 그러나 단순히 평가지표의 순위를 높이려고 ‘우리나라에는 이런 기술도 있고 저런 기술도 있다’면서 백화점식 연구개발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순위를 떠나서 실질적으로 사회적·산업적으로 파급효과를 낼 수 있는 기술에 집중해 선도해야 한다.

-우리가 선도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원천 기술을 응용해 상용화 서비스로 개발하는 것도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다. 그런 차별화된 분야에서 한국이 연구개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가령 우리나라는 의료 분야에서 의료보험을 통해 양질의 데이터를 갖고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도 많은 경험과 데이터, 물적 기반을 갖췄다. 이런 분야들에 특화된 AI를 개발해 세계시장을 겨냥한다면 충분히 기술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AI 연구 인력 부족이 심각한데 해외 인재 영입을 위한 여건이 갖춰져 있는가.



△전 세계적으로 AI 연구 인력의 몸값이 많이 높아져서 쓸 만한 사람을 채용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AI 분야 연구자에게 주는 연봉이 우리 대기업들의 평균 3~4배가량 된다. 우리가 그런 고액을 주고 외국인들을 데려온다고 해도 실제로 그가 몸값에 걸맞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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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구기관들이 미국뿐 아니라 인도에서도 공대 출신들을 데려오기 힘들어서 파키스탄 등에서 AI 전공자들을 수소문하기도 한다는데.

△제3세계에서 2~3류 인재들을 데려와 머릿수를 늘린다고 인재 육성이 될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렇다고 1류 인재들을 데려오기에는 우리의 정주 여건이 부족하다. 언어 장벽, 비자 문제 등 사회 여건을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우리가 고급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중국은 딥시크를 외국인 투입 없이 순수 자국 인력만으로 개발했다. 투입된 인력 규모는 미국의 어지간한 빅테크 대비 9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도 국내에서 전문 인력들을 잘 육성하면 중국처럼 미국 기술을 따라갈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국내 주요 대학들이 정부 지원을 받아 인공지능대학원 10곳을 설립했다. 젊은 과학자를 키우는 ‘스타펠로우십’ 사업과 인공지능센터 건립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다만 무조건 AI 분야 인력을 양적으로 늘린다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재 AI 기술 판도는 상위 1% 이내의 인재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우리도 이런 점을 감안해 인재 육성 정책을 투트랙으로 짜야 한다. 핵심 선도 기술을 연구하는 소수 정예 엘리트를 길러내는 트랙, 그리고 AI 기술을 응용해 이용자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는 트랙으로 나누어 교육과 평가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물적 인프라 여건이 어떤지 궁금하다.

△미국의 상위 빅테크들이 보유한 GPU 칩은 회사별로 최대 수십만 장에서 수만 장에 달한다. 우리 정부도 매년 국내 기업·기관들의 GPU 보유 현황을 조사하는데 보유량이 미국 빅테크 1개 회사만큼도 안 된다고 한다. 그나마 네이버·카카오·삼성전자 등이 많이 보유한 편인데도 각각 수천 장 수준에 불과하다. 국내 주요 대학이나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은 각각 10여 장 정도 보유하고 있다. 물량으로 보면 미국에 비해 중과부적이다. 전력망 공급도 아직 미흡하다. GPU 한 장당 가격이 보통 4만 달러 이상인데 점차 가격이 내려가고 있어 앞으로는 다소 사정이 나아질 수는 있겠다.

-엔비디아의 비싼 GPU 외에 국산 칩이나 다른 반도체를 AI 칩으로 쓸 수 없는가.

△엔비디아 이외에도 AI 칩을 개발·제조하는 회사들이 있지만 아직은 운용 안정성 측면에서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래도 국내 기업 중에서는 리벨리온 등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GPU를 대체할 신경망처리장치(NPU) 등을 개발하고 있다. 물론 NPU는 주로 추론 기능에 특화돼 있다 보니 GPU 기능을 모두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그럼에도 앞으로 AI 개발에서 추론 기능이 점점 중요해지는 만큼 해당 분야에서만이라도 우리가 1등을 점유할 수 있는 칩을 개발해야 한다.

-AI 기술 연구 과정의 제도적 걸림돌을 제거하는 방안은.

△고성능의 AI를 개발하려면 방대한 학습용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개인정보 보호 규제는 미국보다 높아 연구자들에게 제약이 되고 있다. 최근 만들어진 인공지능기본법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AI 관련 제도는 주로 유럽의 법 체계를 참조했다. 유럽은 미국보다 규제 장벽이 높아 AI 기술이 뒤처져 있다. 정부가 신기술 개발과 사업화를 위해 법적 제한에 관한 특례를 주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AI에 대해서는 이 같은 특례를 좀 더 광범위하게 적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술 개발과 상용화, 기술 기반 창업의 길을 터줘야 한다.

◆He is…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전산과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에서 신경망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의 ATR 인간정보통신연구소 연구원과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방문교수를 지냈다. 연세대에서는 인지과학연구소장과 인공지능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데이터마이닝학회 회장으로 활동했고 지난해 9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에서 기술분과위원장을 맡았다.



민병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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