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중국발(發) 인공지능(AI) 가속기 주문 폭주에도 웃지 못하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이 격화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수출 제재가 강화될 경우 생산한 칩셋이 소용없어지는 탓이다. 일각에서는 엔비디아의 재무제표에 선반영된 거액의 매출 채권이 증발해 지지부진한 주가에 부담을 더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2일(현지 시간) 디인포메이션은 “올 1분기 엔비디아가 중국 전용 칩 H20을 160억 달러나 주문받았다”며 “횡재에도 미국이 대(對)중국 H20 판매를 금지할 수 있다는 딜레마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엔비디아의 지난 회계연도 중국 매출(170억 달러)과 맞먹는 규모다.
딥시크가 중국 전용 칩셋으로 뛰어난 성과를 내자 중국 기업들이 주문량을 대폭 늘린 데 따른 것이다. H20은 엔비디아가 중국에 판매할 수 있는 AI 가속기 중 최신 제품이다. 엔비디아는 3년 전 H100의 중국 판매가 금지되자 전용 칩 H800을 냈고, 이마저 수출 길이 막히자 지난해 한 단계 성능을 낮춘 H20을 내놓았다.
바이트댄스·알리바바·텐센트 등 중국 ‘거대 기술기업(빅테크)’들의 주문이 쏟아지며 1년 치 중국 매출을 한 분기 만에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H20이 현 주력 칩셋인 ‘블랙웰’보다 15배 느리다는 데 있다. 중국 기업들 외에는 H20을 구매할 고객이 없는 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수출을 막아선다면 재고를 떠안게 된다.
엔비디아 칩셋을 만들어내는 대만 TSMC의 반도체 생산량이 제한돼 있다는 점도 골치다. TSMC는 1분기 주문받은 H20을 소화하기 위해 생산라인 증설이 필요한 상태다. 디인포메이션은 “가용량을 늘릴 수는 있으나 이렇게 많은 양을 만들어내는 데는 6개월 이상이 걸려 배송이 일러야 올 4분기에나 이뤄질 것”이라며 “엔비디아가 라인을 예약한 후 수출 금지령이 발표되면 중국 밖에서 구매자를 찾아야 하고 재고 처리를 위해 가격을 내려야 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수출 금지로 이미 주문받은 제품의 납품이 불가능하다면 엔비디아 회계에 반영된 미래 매출이 사라질 수도 있다. 엔비디아의 올 1월 말 기준 미수금은 230억 달러로 1년 새 2.3배 늘었다. 디인포메이션은 “매출보다 미수금 증가 속도가 빨라 일부 투자자들은 엔비디아가 너무 일찍 매출을 장부에 올렸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갖고 있다”며 “고객사는 칩이 제대로 작동하기 전까지는 대금을 지불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