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와 의약품 등을 제외한 대다수 한국 제품에 26%의 관세가 부과되면서 정부와 기업들이 비상에 걸렸다. 오랜 내수 부진 속에서 그나마 수출이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었는데 이마저 흔들릴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관세 협상은 장기전이 될 것이며 우리 정부의 협상 능력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당장 우리나라 전체 성장률이 흔들릴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미국 씨티그룹은 3일(이하 현지 시간) 한국 국내총생산(GDP)이 적어도 0.38% 감소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차 부품에 대한 25% 관세만으로도 GDP가 0.14% 감소하는데 관세 부과 범위가 사실상 모든 품목으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이번 관세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20개국 중 캐나다·멕시코와 함께 가장 높다.
이에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0%대를 기록한다는 것이 씨티그룹의 분석이다. 한국은행 내부에서도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기존 전망치(1.5%)보다 0.1%포인트 하락하는 ‘비관 시나리오’에 가까워졌다는 의견이 나왔다.
최석영 전 주제네바 대사는 “무역장벽이 상당히 낮은 한국이 인도나 일본과 비슷한 관세율을 적용받은 것은 말이 안 된다”며 “10% 보편관세에 더해진 15%는 충분히 협상을 통해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적자 폭을 수입액으로 나누는 주먹구구식 상호관세율은 사실상 협상용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이 관세가 그대로 적용되면 미국 소비자들이 가격 인상 폭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며 협상의 여지가 크다고 전망했다. 앞서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 역시 상호관세 문제와 관련해 “협상 전화는 항상 열려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원하는 카드를 신중히 골라 패키지딜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이제 협상의 시간이 시작된 셈”이라며 “조선과 에너지 분야 등 양국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공략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주어진 숫자보다 앞으로의 협상이 더 중요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현재는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높은 관세를 적용받은 상태지만 앞으로는 일부 국가만 관세율을 낮춰주는 식으로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와 비슷한 관세를 적용받은 일본(24%)에 향후 관세율이 5%포인트 할인된다고 가정하면 우리와 수출 경쟁력 격차가 확 벌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만 특혜를 받지는 못해도 최소한 차별은 받지 않도록 일종의 ‘최혜국 대우’ 전략을 짜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 트럼프 1기 정부 당시에도 한국이 먼저 나서 철강 관세 면제 조치를 받아내자 일본·브라질·EU 등이 너도나도 “최소한 한국만큼은 해달라”고 요구하는 방식으로 관세 조치에서 벗어난 바 있다.
당분간 국내 기업들의 고통이 불가피한 만큼 적극적 재정이 중요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어려움에 빠진 기업은 법인세를 일시적으로 낮춰주거나 수출 금융을 확대하는 등의 정책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현재 리더십 공백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귀결되든 정부가 나서 국내 제조업 공백 상태에 대응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삼성이나 현대차가 미국 압박을 핑계로 현지에 로봇이 일하는 미래형 스마트 공장을 세운다면 한국은 일자리와 세수를 모두 빼앗기는 최악의 사태를 맞게 된다”며 “강력한 국내 제조업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도 이날 미국 관세 리스크에 대응해 긴박하게 움직였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3일 두 차례 경제 안보 전략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주재하고 상호관세 조치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한 권한대행은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미 협상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자동차 산업에 대한 긴급 지원 대책을 다음 주 내놓을 예정이다.